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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nt. (FIRST AID & JERRY.K)

앨범유형
정규앨범 , 랩/힙합 / 가요
발매일
2019.03.18
앨범소개
경계를 넘는 프로듀서 퍼스트 에이드와 경계선 위의 래퍼 제리케이의 프로젝트, blent.
두 음악가가 손을 맞대고 표현한 사랑이 담긴 음반 [loves]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관심이 많다면 퍼스트 에이드(FIRST AID)와 제리케이(JERRY.K)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퍼스트 에이드는 룸306(Room306)의 프로듀서이며, 제리케이는 래퍼이자 힙합 레이블 데이즈얼라이브(DAZE ALIVE)의 치프다. 이렇게만 본다면 둘의 접점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둘은 제리케이의 지난 음반 [OVRWRT]의 수록곡 “알약”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블렌트(blent.)라는 프로젝트가 갑작스레 구성되진 않았을 테니, 블렌트.의 시작을 이때로 잡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블렌트.가 정식으로 시작된 건 싱글 “odd eye”를 발매하면서다. [loves]는 “알약”과 “odd eye”의 확장판처럼 느껴진다. 우선 제리케이는 음반 전체에서 여러 대상에 대한 사랑을 다룬다. 대상은 배우자나 연인, 자기 자신과 같은 작은 점부터 연대나 인류애 등, 큰 면으로 커지기도 한다. 음반 제목이나 곡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앞서 언급한 것들이나 곡 제목,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음반의 주제는 크게 특별하지 않다. 대부분 사람이 살아가며 마주치는 평범한 주제들이다.

역설적으로 평범한 주제이기에 음반은 특별해진다. 많은 이가 공통으로 겪는 경험인 만큼, 개인의 시점이 다양해진다. 제리케이의 시점도 수많은 개인 중 하나다. ‘많은 이가 공감하는 주제’인 동시에 ‘제리케이만의 시점이 담긴 음악’인 셈이다. “odd eye”의 가사는 좋은 예시다. 곡은 반려견을 키우는 이라면 공감할 표현으로 가득하지만, 사자(제리케이의 반려견)가 백내장을 앓고 있고, 한쪽 눈이 하얗다는 배경지식을 통해 사자와 제리케이만이 가진 특색이 담긴 곡이 된다. [loves]의 나머지 곡도 마찬가지로 ‘사랑’이란 개념을 제리케이의 시점에서 이해하고 표현한 음반으로 완성된다.

음반 초반부는 제리케이 자신을 주로 다룬다. 그는 남보다는 자신을 탓하고, 삶에서 미숙한 순간이 많음을 고백한다. 자책에 가까운 행위는 “2907”에 도착하며 폭발한다. 첫 번째 벌스의 끝에서 목소리와 곡이 동시에 무너지고, 강한 베이스가 듣는 이의 귀를 덮는다. 하지만 이 곡의 마지막 벌스에서 그는 ‘자랑 대신 자학을 택할 만큼 간단한 존재가 아냐’라며 딛고 일어서기에 성공한다. 이후 곡들은 연인, 배우자, 연대 등에서 그가 느낀 사랑으로 이어진다. ‘새끼손가락 대신 왼쪽 네 번째에 백금 같은 약속’이란 구절은 배우자를 표현한다. “no words”는 연대나 친구 등을 연상케 한다.

음반 절반을 제리케이가 채웠다면, 나머지 절반은 퍼스트 에이드의 몫이다. 그간 다양한 프로젝트로 여러 음악을 선보인 퍼스트 에이드는 이번 음반에서도 특정한 형식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대신 음반의 곡이 넘어갈 때마다 리듬은 다양하게 바뀌고, 들려주는 공간의 모습도 달라진다. 드럼과 피아노, EP, 몇 가지로 디자인한 신시사이저 등 많지 않은 악기를 사용하면서도 듣는 이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게 하는 건 그의 편곡이나 사운드 디자인이 적재적소에 있단 점에서 기인한다. 여기에 리코(rico), 우주(uju), 클랑(klang), 김사월 등이 피처링으로 새로움을 더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블렌트.를 단순 프로젝트팀이라고 말하기엔 [loves]가 주는 경험은 꽤 흥미롭다. 이 음반은 트렌디하지도 않고, 화려하게 장식된 랩이나 비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잔잔하게 흘러가는 음반에 가깝다. 하지만 들을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잔잔하기에 놓친 디테일한 지점이 꽤 많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보단, 우선 음반을 한 바퀴 돌리고 다시 한번 처음부터 들어보자. 놓친 부분들을 하나하나 줍다 보면 [loves]를 당신의 시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데이브 에거스(Dave Eggers)가 ‘음악을 여러 번 듣는 이유는 그 음악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건 이런 음반을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글: 음악칼럼니스트 심은보

[credit]
executive producer : DAZE ALIVE
album producer : FIRST AID & JERRY.K
management : DAZE ALIVE

all tracks produced by FIRST AID
all lyrics by JERRY.K
all tracks mixed and mastered by FIRST AID

art director : NSH
photographer : 왕소연
models : 최수빈, 배하영
‘odd eye (feat. klang)’ m/v director : 오세인
‘no words (feat. 김사월)’ m/v director : 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