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정보

안치환

안치환

공유하기
활동유형
남성/솔로
스타일
블루스/포크
데뷔
1989년 / 소금 인형
아티스트 소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민중음악가 안치환. 


운동권 노래패에서 경력을 시작한 그는 이후 솔로 가수로 데뷔, 삶에 대한 치열한 의식을 반영한 노랫말과 뛰어난 작곡가로서의 역량을 바탕으로 일반 대중에게까지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경직된 민중음악계와 혼탁한 대중음악계 간에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1966년 출생인 안치환은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좋아했고 자주 불렀지만 직업적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연세대학교 신학대학) 입학과 함께 겪게 된 1980년대의 암울한 시대상은 그에게 음악을 통한 분노의 해소를 찾도록 만들었고, 노래패 '새벽'과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소속되어 가수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노찾사'의 2집 음반 참여 이후 이름이 제법 알려진 안치환은 각종 무대에서 걸쭉한 특유의 노래 솜씨를 발휘해 보였고, 1990년 마침내 솔로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1990년 발표된 안치환의 1집 [안치환 노래모음 첫 번째]는 안치환의 끓어오르는 음악적 열정이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한 음반이다. 안치환은 상당수의 곡을 직접 작곡하며 열의를 보였지만 일그러진 음악 제작 시스템으로 인해 안치환은 실망감만을 안게 되었다.


1991년의 2집 [노래 한마당]도 가진 재능을 온전히 다 보여준 음반은 아니었다. 이런 아쉬움 때문인지 안치환은 3집 이후 1, 2집을 새로 연주하고 녹음한 음반 [1+2]를 내놓기도 했다. 안치환의 진정한 뮤지션으로서의 경력은 사실상 1993년의 3집 [Confession]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조동익 밴드와 함께 작업한 이 음반은 안치환의 뛰어난 작곡가로서의 재능이 잘 발휘된 작품으로 김남주의 시에 곡을 붙인 '자유', 류시화의 시를 노래로 만든 '소금인형'과 같은 뛰어난 곡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1995년 나온 4집 [1995]를 통해 안치환은 민중가수에서 대중적 인기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여기 실린 발라드곡 '내가 만일'이 라디오 등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안치환이 새삼 대중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사실 '내가 만일'은 제작자의 권유로 인해 수록한 곡이었고 정작 안치환이 심혈을 기울인 곡은 '당당하게', '수풀을 헤치며' 등의 메시지 뚜렷한 노래들이었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 아무튼 4집으로 인기를 얻은 안치환은 여러 공연과 축제 등에서 사람들로부터 환영받는 가수로 거듭나게 되었고, 다음 음반들을 제작하는데도 힘이 실리게 된다.


4집의 대중적 성공이 마음의 부담이 되었는지, 안치환은 1997년에는 민중가요의 고전들을 리메이크한 음반 [Nostalgia]를 발표하기도 했다. '부용산', '타는 목마름으로' 등이 실린 이 음반은 안치환의 정체성을 잘 반영하는 음반이기도 하다. 그리고 같은 해 나온 5집 [Desire]는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새로 조직한 밴드 '안치환과 자유' 체제로 녹음한 첫 음반인데, 꽃다지가 노래했으나 그리 알려지지 못한 곡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사랑하려네'와 '하나를 위한 연가'도 팬들로부터 사랑받은 곡에 속한다.


안치환은 4집의 성공 이후 비교적 안정적인 경력을 구가하고 있다. 1999년과 2001년에 각각 6, 7집 음반을 발표했는데 예전보다 날이 무뎌졌다는 세간의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무난한 내용물을 담고 있는 음반들이다. 그리고 2004년에는 오랜만의 8집 [외침]을 발표했는데, 이 음반에서는 이라크 전쟁 등을 둘러싼 분노가 컸던 탓인지 이전보다 한결 강력해진 메시지가 담겨 오랜 안치환의 팬들을 반갑게 하고 있다.

아티스트 이미지

  • 안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