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Kid

공하임 2018.02.27 22
해가 얼마나 오래 떠있을지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믿음이란 게 이제는 
내 눈을 가렸던 거라고 믿고 있어
죽을 만큼이라는 표현에 
잠시 난 숙연해졌어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작았었구나 느끼며 
작은 나는 씁쓸해져 앉아있어 
이게 나야

나보고 책 읽으라던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죽어
때때로 늙은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넘쳐
그게 내 모습이고 그림잔데
우리 할머닌 시간을 내 
나가서 폐지를 주워 담으며
몇 백 원 벌어서 내게 
과자를 사주곤 했어
쪽팔렸어도 날 살찌웠어 그게 나야

집 앞 민호네 오락실 
내 시간을 보내며
부러웠지 얘네 집엔
키우던 강아지도 있었고 
신고 있던 신발에 나이키 
문양이 눈에 들어올 땐
내가 물려받은 작은 누나의 
옷 촌스러운 내복
분홍색 신발이
날 숨어들고 웅크리게 해
돌아오는 골목길이 어두워서 
할머니 날 기다릴 때
우리 할머니가 엄마 대신 
유치원 학예회에 찾아올 때
친구들이 앞에서 나를 쳐다볼 때
급식 당번이신 어머니들 사이에서 
할머니를 보았을 때
날 보고 웃었을 때 
난 열쇠를 잃어버린 다섯 살처럼 
대문 앞에서 서성이네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는데 
난 구석에서 잠들곤 해
할머니의 트로트가 나의 자장가야

할아버지는 늙은 장사꾼
욕 봤지 리어카를 묶어놓고
점심때면 나가서 들어오지 않아
담배꽁초를 주워 피시네
청량리에서 자란 내가 
자주 보았던 구석진 사창가에
할머닌 나보고 쳐다보지 말라며 
겁을 주곤 했어
그게 나의 뚜렷한 기억
이제는 시간이 지나서 
하나둘씩 사라지고
내 작은 놀이터가 무너져 
아파트가 들어섰고
또 다른 다섯 살이 
유치원에 보내졌고
우리 엄마는 날 맡기고 가
퇴근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길어 
날 지치게 해
난 구석에서 잠들곤 해
할머니의 트로트가 
나의 자장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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