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를 썰었어

송좌 (Songjwa) 2018.04.12 45
네가 좋아하던 노랠 듣다가
난 양파를 썰었어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비워갈 때쯤에
난 양파를 설었어 
마지막으로 받은
문자를 보다가
난 양파를 썰었어 
난 양파를 썰었어 오늘도

네가 떠난 그 자리에
시간들이 찾아와 
하고 싶은 것이 많아
제자리를 찾아가 
원래대로 돌아온 것 뿐이라서 
난 지갑 열어서 장바구니를
가득 채워 담아 

남는 거야 돈 
신경안쓰니 만족해 버릴 거야 
나를 위해 털어내 잔고 

이젠 혼자서도
영화 볼 줄 알아야 해 
이젠 혼자서도
밥 먹을 줄 알아야 해 

그래서 나는 유튜브를 보며
요리했지 
친구들이 불평하지 않게
고민했지 
너를 만족시키던 과거의 나보다 
지금 내 주위 사람들을
지키려 꽤 노력했지 

근데 눈이 너무 빨개
양파는 너무 매워 
다들 눈치 빠르지 싸해 멘솔 
눈물이 멈추지 않게
모른 척 눈감아줘 
칼질이 멈추지 않게
손을 놓아줘 

네가 좋아하던 노랠 듣다가
난 양파를 썰었어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비워갈 때쯤에
난 양파를 설었어 
마지막으로 받은
문자를 보다가
난 양파를 썰었어 
난 양파를 썰었어 오늘도

난 양파를 썰었어 
그 다음에 지워버린
너의 연락처 
모르고 눈앞을 비벼버렸어 
쏟아지네 눈물이 왈칵 여러 번 

너 따위는 내 인생에
절반도 안 돼 
라고 얘기한 뒤
다른 여자들도 죄다 똑같애 
너를 못 이겨
나는 너를 못 이겨 
내 그림자를
가려버린 너란 어둠 짙어 

남자는 울지 않아 
힙합은 상남자 
필요 없어 지난 사랑 
다만 매워 양파가 
나는 새로운 요리를 
배워야 하기 때문에 
흐르는 눈물을 
찬물로 다 세수해 

그래도 충혈돼버린 나의 눈 
불현듯 생각나지
시간이란 놈은 사기꾼
지나고 나면 
매운기 가신다 했는데 
여전히 맴돌아 
양파 한 망을 또 주문해 

네가 좋아하던 노랠 듣다가 
난 양파를 썰었어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비워갈 때쯤에 
난 양파를 설었어 
마지막으로 받은 
문자를 보다가 
난 양파를 썰었어 
난 양파를 썰었어 오늘도 

찢어버린 사진 주워 
모자이크 
방구석에 몰아넣고 
미련 없다 소란 떨고 
그냥 시끄럽게 보지 않는 
TV를 켜고 
주방에 틀어박혀서 
냄비에 찬물을 넣고 

난 양파를 까고 
눈물 흘리는 바보 
이건 맛이 없을 거야 정말로 

난 양파를 까고 
눈물 흘리는 바보 
이젠 참지 못하겠어 하나도 

네가 좋아하던 노랠 듣다가 
난 양파를 썰었어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비워갈 때쯤에 
난 양파를 설었어 
마지막으로 받은 문자를 
보다가 난 양파를 썰었어 
난 양파를 썰었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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