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남유선 2019.02.26 32
이방인의 나라에 도착한 매혹적인 멜로디 메이커

동시성(Simultaneity)과 직관(Intuition)을 핵심적인 미학으로 움켜쥔 재즈는 그 어떤 예술보다 연주자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음악이다. 연주자는 한 자락의 솔로로 자신의 지향을 규정하고 정체성을 어필한다. 그런데 음악을 듣는 입장에서 바라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물론 솔로도 매우 중요하지만 연주(자)의 인상을 결정하는 건 결국 곡을 통해서다. 솔로의 미학이 극한에 치달았던 20세기 중반과 달리, 현대에선 곡 자체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곡이 좋으면 뒤이어 어떤 솔로가 펼쳐질지 자연스레 궁금해지지만, 애초에 곡이 흥미를 끌지 못하면 듣는 이의 시선을 붙들고 있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색소포니스트 남유선이 본격적으로 한국 재즈계에 이름을 올린 건 오래되지 않았다. 뒤늦게 유학길에 올랐고, 학업을 마친 뒤에도 수년 간 뉴욕에 남아 그곳에서 현대 재즈의 어법을 체득하기 위해 애썼다. 대부분의 재즈 팬들은 2015년 뉴욕에서 녹음된 첫 앨범 [Light of The City]를 통해 그녀의 존재를 인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뒤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넓은 숲과 대양에서 날아다니던 새 한 마리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그 오랜 여정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재정립했다고나 할까. 곡 작업과 연주 모두에 있어 남유선은 드디어 전성기에 돌입했다.

두 번째 앨범 [Strange, But Beautiful You]는 남유선의 ‘변신’을 얘기할 만큼 색다른 양상을 드러낸다. 곡, 구성, 연주, 사운드, 그리고 태도까지 모두 그렇다. 우리는 이런 발전을 두고 음악적 성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남유선이 귀국 전후로 선보여온 연주를 되짚어보면 되레 음악 외적인 측면에서 의미 있는 영감을 많이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유학길에 올랐던 10년 전과 지금의 재즈계는 크게 다르다. 당시엔 재즈의 어법을 충실히 재현하기만 해도 어느 정도 지지를 받았지만, 이젠 자신만의 개성을 지니지 못하면 아무 의미도 부여받지 못한다. 지금 한국의 재즈는 생존을 논할 정도의 치열한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잘 팔리는 스타일을 연주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확히 말해 그런 고민은 재즈를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기획자나 제작자가 떠안아야 할 부분이다. 연주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예술적 숙명을 깨닫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표현해냈을 때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색소포니스트 남유선은 재즈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노력과 마인드를 요구하는지 깨달았다. 역설적이지만, 진정 탁월한 연주를 행하기 위해 재즈인은 재즈 자체보다 스스로를 더 중시해야 한다. 냉정히 표현하면, 재즈를 위해 삶을 바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음악으로 치환하는 데 재즈를 주된 그릇으로 택하게 될 뿐이다.

뉴욕에서 녹음된 남유선의 데뷔작이 현대 재즈의 뉘앙스를 스스로에게 대입한 것이라면, 반대로 이번 앨범은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쟁취한, 매우 뜻 깊은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작품의 가장 큰 성과인 ‘곡’으로 집약된다. 남유선은 매혹적인 ‘멜로디 메이커’로 다시 태어났다. 대부분의 소재는 일상에서 비롯됐는데, 영감을 안겨준 존재들을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일관된 시각으로 이들을 해석해냈다. 남유선은 ‘나’를, ‘나의 영역’을, 나아가 ‘재즈’를 낯선(Strange) 존재로 칭했다. 그러나 그 대상(You)에 깃든 외로움보다 아름다움(But Beautiful)에 더 주목했다. 바로 이 시각이 앨범의 핵심이다. 

나는 곡 쓰기에 대한 태도와 지향이 오늘날의 한국 재즈를 바라보는 가장 핵심적인 잣대라 믿는다. 근년 들어 우리나라의 적지 않은 재즈인들이 저지르고 있는 가장 큰 오류는, 성실한 학습의 결과만 갖고도 한 장의 앨범을 완성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부족한 연주력과 표현력을 거창한 콘셉트로 메우려는 시도까지 눈에 띈다. 선택에 따른 책임은 본인의 몫이지만, 그런 접근이 자신의 정체성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우선적으로 자문할 필요가 있다. 남유선의 곡들에서 느껴지는 향취는 오롯이 그녀만의 것이다. ‘나답지’ 않은 것들은 모두 제쳐둔 채 소신껏,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이러하다’는 투로 에두름 없이 멜로디를 엮어 나간다.

함께한 동료들의 연주 또한 특기하지 않을 수 없다. 기타리스트 오진원, 피아니스트 윤지희, 베이시스트 김영후, 그리고 드러머 김영진은 현재 한국 재즈계를 최전선에서 이끌고 있는 소장파 연주자들이다. 탄탄한 연주가 빛을 발하는 가운데, 녹음에 앞서 많은 무대에 오르며 ‘남유선 퀸텟’만의 밴드 사운드를 구축해 두었다는 점도 유효했다. 마치 모든 곡을 밴드가 함께 만든 것처럼 정서적으로 잘 짜인 앙상블.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관심과 고민을 공유한 세대적 교감 때문이었을까. 만약 한국 재즈의 ‘오늘’이 궁금하다면, 철 지난 이름값으로 클리셰를 반복하고 있는 이들보다 이런 작품에 참여한 연주자들을 먼저 주시해보라고 말하겠다.

시간이 갈수록 남유선의 색소폰 연주는 점점 더 짙은 아우라를 과시하고 있다. 마치 하나의 큰 도막처럼 들릴 만큼 매력적인 내러티브의 서사성을 획득한 [Strange, But Beautiful You]는, 2018년을 빛낼 극소수의 역작 중 하나다. 나는 이 앨범을 들으며 재즈인이 결국 이방인의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아웃사이더의 소외감이 아닌, 자기 자신마저 객관화할 정도의 냉철하고 흔들림 없는 마인드를 갖췄을 때 비로소 음악 자체에 몰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남유선은 스스로 이방인이 됐다. 그리고 그 덕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김현준(재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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