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짐에 대해 (Feat. 다운)

지코 (ZICO) 2019.11.08 3,454
요즘 따라 시간이 이상해 
헤어진 날에서 며칠째 살아
나지막한 바람 창틈으로 새면 
네 숨결이 닿을 것 같아

끝내 읽히지 못한 편지 한 장 
포장째 시들어 버린 꽃 한 다발
내가 받아 본 것 중 
가장 비참했던 이벤트

계절은 봄을 데리러 갔지만 
난 지난번 겨울 끝자락에 남아
천천히 배웅하려고 해 
잘 가 잠깐

내가 붙여준 별명들 
사사로운 네 기쁨, 슬픔까지
이제 내 것이 아닌 거네 
난 무사할까 감히 혼자서

요즘 따라 시간이 이상해 
헤어진 날에서 며칠째 살아
날 지긋이 보는 까만 밤 하늘이 
네 눈동자를 닮았어

고개만 돌려도 만날 수 있었는데 
눈 감아야 겨우 보일 듯해
얼마나 환했으면 
이토록 찡그리는 걸까

그동안 내 흔적을 몇 개나 
발견했니 
문득 떠올라도 그가 볼까 봐 
딴청 했니
기억은 잊혀질 때가 돼서야 
뚜렷한 형상을 하고 앞을 지나쳐 가
보름 내내 날 간호해 줬을 때도 
재미 삼아 결혼 날짜를 꼽아볼 때도
넌 계속 마지막을 준비 해왔나 봐 
영혼 없이 영원만 들먹인 
이 머저리한테서

어떻게 된 게 두근거림이 
전보다 심해졌어
설레임 보단 조바심이 생겨서 
넌 우릴 내려놓았고 난 미처 몰랐지
이유와 잘못을 찾는 
내가 그 이유와 잘못인 걸

요즘 따라 시간이 이상해 
헤어진 날에서 며칠째 살아
구차한 거 맞아 안 떠난다는 말 
나 혼자라도 지킬게

메시지 창엔 여전히 
화목한 대화가 남아있어
엄지 손에 한때 흘린 
너의 눈물 자국이 남아있어
그만 가봐야 된다는 
너의 마지막 목소리가 남아있어
아직도 모든 게 제자리에 남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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