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ctal

바가지는 “음악이 안 되면 주먹으로” 티셔츠를 유니폼처럼 입고 다닐 정도로 재미가 몸에 배인 사람이지만 지켜볼수록 그에 못지 않게 진지함 또한 겸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예로 그가 만드는 페스티벌 ‘존나페’는 겉으로는 SNS용 B급 유머로 가득한 것 같지만 바탕에 깔린 스피릿을 보면 로컬 페스티벌의 참된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무명 시절에 아무도 없는 홍대 지하도에서 2년 동안 매주 디제잉 버스킹을 했다는 것도 디제이에 대한 꿈이 진지하지 않았다면 결코 불가능할 일이다. 

주로 진지한 콘텐츠를 재미로 포장해 활동해온 그지만 이번 앨범 [Metamorphosis]에서만큼은 그렇지 않고 싶었던 것 같다. 한때는 ‘오손도손’, ‘도란도란’ 같은 제목으로 테크노를 발표했지만 여기선 그런 모습을 1%도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유럽을 휩쓸고 있는 어둡고 웅장한 에픽 성향 테크노를 ‘변신(Metamorphosis)’을 주제로 한 10곡의 컨셉 앨범에 담아 쉽게 말해 ‘각 잡고’ 발표했다. 앨범 타이틀과 수록곡들 제목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치밀함에 놀란다. 전체 컨셉을 ‘변신’으로 잡고 그와 연결될 만한 하위 개념들로 수록곡들 이름을 정했다. ‘탄생(Nativity)’, ‘증식(Fractal)’, ‘교배(Hybrid)’, 이런 식이다.

음악적으로도 신나게 파티할 수 있는 트랙들이라기보다는 심오한 감성을 전달하거나 웅장하게 펼치는 테크닉을 선보였다. 앨범을 여는 인트로 성격의 트랙 ‘Nativity'부터가 남다르다. 고요한 피아노로 시작해 현악기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격렬한 타악기로 에너지를 폭발시킨다. 영화 음악의 오케스트라 편곡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야심차게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한 싱글 ‘Fractal’도 디스토피아 SF 영화에 삽입될 법한 슬프고 웅장한 전자 음악이다. 댄서블한 리듬보다는 한 차원씩 더해가는 레이어에 집중하며 극적인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바가지 이름을 지우고 다른 이름으로 발표했다면 누구도 이 곡이 동일인의 곡임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한 곡이 아닌 앨범 단위로 달라진 음악들을 들으니, 따로 발표했다면 잠깐의 외도로 보였을 이 음악들이 바가지의 또 다른 음악적 축으로 공식화된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전향’ 여부를 물어봤을 때 바가지는 예전 스타일의 테크노도 꾸준히 만들고 있지만 이 앨범 만큼은 이런 곡들로 채워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스타일의 전면적 재조정은 아니라는 얘기다. 음악적 전환이란 거창한 수식어를 붙일 수는 없겠지만 이 앨범을 들으며 바가지의 몰랐던 부분이 열려 드러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런 음악도 만들고 좋아해’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읽히는 것 같았다. 아마 바가지를 알고 좋아해온 다른 분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이 정도의 변화 폭을 가진 음악을 앨범 단위로 풀어내는 일은 프로듀서의 전체 커리어에서 그리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 [Metamorphosis]는 시간이 더 지나서도 바가지의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남을 것 같다.

음악 저널리스트 - 이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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