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기억을 먹고 자라나 봐

아키템포 (AKITEMPO) 2021.08.06 11
손에 가득했던 코코아 컵의 따뜻했던 온도와
내 어린 날을 채워준 노란 솜사탕 한 입의 기억과
포근한 비누의 하늘색 냄새로 
난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

나는 내가 먹은 기억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
조그맣고 사소한 부끄러울 만큼 평범한
기억들만 내게 남은 걸

새로운 기억도 참 많아서 내 키가 멈추지를 않아
내가 다 컸다고 누가 그런 거야
나는 아직 크는 중인가 봐

여름날 마루에 비쳤던 구름의 희미한 형태와
손잡을까 망설였던 어두운 골목 
주황빛의 색감과

베개맡 강아지들의 숨소리로 
내가 이루어진 것 같아
난 기억을 먹고 자랐나 봐
 
부푼 기대로 마주했던 거친 현실의 감촉들과
방 한 켠에 놓여있던 
우리 아빠의 낡은 일기장과

남몰래 간직한 아픔의 무게로 
내가 이뤄진 것 같아
난 기억을 먹고 자랐나 봐

어두운 천장에 반짝이던 초록빛의 작은 별들과
해마다 키를 적었던 내 방문 틀 
옆의 연필 자국과

새하얀 놀이터의 고운 모래로 
난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
나는 아직 자라고 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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