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The Swimmer

The Swi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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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지 (Sunji Lee)

앨범유형
정규앨범 , 전체 / 재즈
발매일
2008.12.18
앨범소개
프로듀서의 역할까지 떠안은 재즈 연주자의 데뷔 앨범은 여간해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피아니스트 이선지의 데뷔작은, 모든 면에서 아주 좋은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명의 소중한 연주자를 갖게 됐다. 이선지의 데뷔작 The Swimmer는 작곡만 가지고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이에 대해 강한 집착을 숨기지 않는다. 콜 포터(Cole Parter) 원작의 스탠더드 ‘So in Love’를 제외한 여덟 곡이 창작곡인데, 그렇다고 단순히 비율의 문제를 얘기하는 건 아니다.

그녀의 곡들은 대부분 포스트모던을 지향한 채 독특한 인상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일견 우리나라 연주자의 작품이 아닐 것이란 인상이 들만큼 이질적이기도 하다.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새로운 이미지의 구축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최근 우리나라 재즈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여러 음악인들의 작품 중에서 손꼽을 만큼 시선을 끈다. 그 이미지는 구상과 추상을 오가며 매우 이성적인 면모를 과시한다. ‘Unrequited Love’를 제외한 모든 곡들이 감성에 의해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것이 아닌, 멜로디의 모티프와 리듬, 화성의 상관관계를 오래도록 조율하며 완성해냈다는 심증을 갖게 한다. 치밀하게 ‘조탁된’ 작곡이라고나 할까.

‘On the Fly’에서 점을 찍듯 이어가는 솔로, ‘Horses on the October Night’와 ‘Reflection’에서 좀더 추상적으로 전개되는 연주, 그리고 리듬을 타고 넘는 ‘Cry’의 솔로는 앨범의 모든 것을 상징한다. ‘The Swimmer’의 멜로디와 솔로에서 맛볼 수 있는 시니컬한 면모도 빼놓을 수 없다. 인상주의적으로 말하면, 여기에서 묘사된 ‘수영하는 사람’은 결코 잘 단련된 기술로 자연스레 물살을 가로지르는 수영선수가 아니다. 무언가에 쫓긴 듯 발버둥치며 사지를 놀려대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거나, 되레 물 속으로 가라앉기만 하는 상황이 연상되기도 한다.

일견 낯 뜨거운 우리네 삶의 모습을 희화화한 셈인데, 이렇듯 효과적으로 형상화된 이미지와 그 안에 깃든 페이소스를 포착할 수 있다면 구상과 추상 사이를 오가는 앨범의 매력을 비로소 파악한 것이다. 두 번째 곡인 ‘Peace’에서 넓디넓게 이어지는 모드의 흐름 또한 앨범 전체의 지향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아름다운 곡이다. 이 앨범에 실린 아홉 곡 중 피아노 트리오로 연주된 ‘On the Fly’와 ‘Unrequited Love’, 그리고 ‘So in Love’를 제외한 여섯 곡은 트럼펫 쿼텟의 편성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서 트럼펫을 맡은 이는 1990년대부터 모던 크리에이티브 계열에서 탁월한 음악성을 선보인 랠프 알레시(Ralph Alessi)다.

무엇보다 그는 이선지의 작곡이 지닌 의미와 지향을 완벽히 파악한 채 연주에 임했다. 작품의 높은 완성도를 위해 그의 역할은 매우 컸는데, 솔로의 진행 뿐 아니라 간간이 이어지는 처연하고도 냉랭한 톤을 놓치지 않기 바란다. 아울러, 동료들 사이에서 두터운 신뢰를 얻고 뉴욕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베이시스트 벤 스트리트(Ben Street)와 드러머 마크 퍼버(Mark Ferber)의 탄탄한 연주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렇다고 이들이 앨범의 가치를 좌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선지의 좋은 작곡이 이들로 하여금 풍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