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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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앨범유형
정규앨범 , 인디 / 가요
발매일
2013.05.14
앨범소개

지긋지긋한 사랑들에게 들려주는 오지은의 축가, 영원하지 않을 사랑들에게 들려주는 위로의 노래


오지은을 듣는다. 오지은을 자주 들었다. 창문 열린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마음이 부글거리던 밤에, 어긋난 가을에, 오후의 홍차를 마시며, 별이 뚝뚝 떨어지는 밤의 소리를 들으며, 웃으면서 때로는 울컥하면서, 오지은을 들었다. 어떤 목소리는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뒤흔든다. 어떤 노래는 3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삶을 흔든다. 오지은의 노래가 그랬다. '華(화)'의 도입부는 들을 때마다 시큼하고, 'Wind Blows'의 멜로디는 마음을 굳게 다잡고 들어도 늘 울컥한다.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의 가사는 다시 들어도 새록새록 새롭고, '두려워'는 매번 내 몸을 바닥으로 내리꽂는다. 오지은을 듣는 건 시간을 붙잡는 일이고, 감정의 격랑을 헤쳐나가는 일이다.


이제, 오지은의 3집을 듣는다. 불안하고 설렜지만 첫 곡 '네가 없었다면'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느릿느릿하고 담담한 오지은의 목소리가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순간, 감정이 요동친다. 어떤 목소리는 그렇다. 듣는 순간 마음이 일렁인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도화지의 작은 점'이라고 부르는 또박또박한 발음에서 한숨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넓고 넓은 도화지 속 하나의 작은 점이었다고, 하나의 점이었던 적이 있었다고, 그래서 우린 아무 것도 아니었었다고. 기타 소리가 수면의 물결처럼 번져나가고, 오지은은 기타 소리 사이에서 작은 점을 응시하며 여전히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다음 곡에서도 그 다음 곡에서도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오지은의 목소리는 더욱 넓어졌고, 깊어졌다.


작은 점 하나에서 사랑이 시작된다. 사랑은 지긋지긋하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매번 반복된다. 그래도 다시 빠진다. 점에서 나온 선이 춤을 추며 뻗어나가고, 우리는 사랑 속에서 '수많은 색이 뒤섞여 엉망이 된 물감' 같은 몰골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기꺼이 다시 사랑에 빠진다.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뛰어든다.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한다. '고작'과 '사랑한다고 거짓을 말해줘', '그렇게 정해진 길 위에서'는 고백과 후회와 응시와 연민과 체념이 뒤얽힌 복잡한 사랑의 마음을 도화지에 그린 다음 찢어 놓은 세 조각 같다. 찢어진 색들이 슬프게 반짝여서, 다시는 되돌리지 못할 것이어서, 아름답다. 이 앨범은, 지긋지긋한 사랑들에게 들려주는 오지은의 축가 같다. 영원하지 않을 사랑들에게 들려주는 위로의 노래 같다.


앨범의 완성도는 오지은의 앨범 세 장 중 최고다. 연주와 편곡 등 소리의 완성도도 뛰어나고, 함께 참여한 (화려한 면면의) 뮤지션들과의 호흡도 절묘하다. 감정의 낙차를 배려한 곡의 배치도 훌륭하다. 수줍은 두 사람의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르는 보사노바 곡 '테이블보만 바라봐', 시끌벅적한 여자 친구들의 저녁 식사를 보는 것 같은 'not gonna fall in love again'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조용히 세상을 응시하는 '서울살이는'이나 담담해서 더욱 등골이 서늘해지는 '누가 너를 저 높은 곳에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처럼 조용히 반짝이는 곡들도 있다. '물고기'나 '어긋남을 깨닫다'는 오랫동안 반복해서 듣게 될 것 같다.


오지은 1집이나 2집에 비해 이번 앨범은 비관적이다. 비관적이라는 건 일부러 밝게 보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조명 없이 자연광으로 세상을 보겠다는 뜻이다. 조금 어두워 보여도 어쩌면 그 적은 빛이야말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정도의 광량인지 모른다. 일부러 어두워질 필요 없지만 애써 밝게 보일 필요도 없다. 그게 오지은이 건네는 위로다.


이제 다시 오지은을 듣는다. 오지은 3집의 노래들을 듣고 또 듣게 될 것이다. 노래 위로 시간이 쌓이고 시간 위로 노래가 쌓일 것이다. 함께 시간을 쌓아갈 수 있는 뮤지션이 있어서 고맙다. 빈말이 아니라 무척 고맙다.


-소설가 김중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