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Tea Cup

Tea C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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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찬

앨범유형
싱글/EP , 인디 / 가요
발매일
2019.12.09
앨범소개
권순찬 [Tea Cup]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찻잔과 받침대가 부딪히는 청량한 소리가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적당한 말소리와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커피 머신의 소음을 뚫고 카페 내부를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를 선명하게 들은 건 아마 나뿐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 모든 것들이 멈추고 찻잔의 울림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참 예쁘게 생긴 찻잔세트다. 고급스러워 보이진 않지만 분홍과 빨강이 섞인 무슨 꽃인지 모르는 무늬들이 띄엄띄엄 그려져 있었는데 가게에 울리는 재즈와 커피 냄새, 그리고 앤티크 한 인테리어까지 각자가 각자를 꾸며주는 듯한 팀플레이였다.

그녀가 한 모금 마신 후 찻잔을 내려놓는 순간 나는 느꼈다. 뭔가 간절하지만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불안한 감정이랄까. 그런 것들이 찻잔의 청량한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그녀는 나에게 함께 지나왔던 시간들이 아쉽다고 말했지만 준비를 하고 온 듯이 적당한 시간을 뜸 들인 후 누구보다 냉정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카페 문이 열리자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다는 듯 차가운 바람이 잠깐 들어오더니 이내 사라졌다. 정말 순간이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지난 모든 날은 그저 이 카페에서 있었던 한순간뿐이었다. 나는 한동안 테이블 다리에 묻어있던 커피 자국을 빤히 쳐다봤다. 이 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발견했던 건데 아까부터 계속 거슬렸었다. 한 10분 정도 쳐다봤을까 갑자기 목이 말라 내가 주문했던 식은 라떼를 마셨다. 맛이 너무 텁텁해서 순간 그녀가 마시다 만 찻잔에 눈이 갔다. 그녀는 홍차를 좋아했고 가끔가다 우유를 섞어 마시기도 했다. 심지어 더운 여름에도 항상 따뜻한 홍차를 마셨었다. 나는 입안이 텁텁했지만 꾹 틀어막은 체 다시 한동안 그녀가 앉았던 자리와 찻잔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한 시간 전으로 머물러있었다. 그녀가 자리를 떠난 뒤 내 시간은 그때로 멈춰버리고 만 것이다.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과 같이 묶인 채로 말이다.

나는 이제 그 묶여버린 추억들을 이 찻잔에 옮기려 한다. 그녀가 마시다 만 식어버린 홍차 속으로 말이다. 한동안은 찻잔의 소리와 홍차를 마실 때마다 묶여있는 추억이 생각날 것이고, 겨울이 올 때마다 묶인 밧줄을 풀며 어딘가 기억 속으로 날려버릴 것이다. 그리곤 우리는 점점 서로를 잊으며 살아갈 것이다. 또 다른 겨울을 기다리며 말이다.

[Credits]

Produced by rynjae
Composed by 권순찬, rynjae
Lyrics by 권순찬
Arranged by 권순찬, rynjae, ZonJohn
Vocal by 권순찬
Acoustic piano by rynjae
Synth by rynjae
Synth bass by ZonJohn
Recorded by rynjae, ZonJohn
Mixed & Mastered by rynjae, ZonJohn
Artwork by 권순찬
Thanks to Moomphoto(뭄포토), Art.o,gal(아토, 갈)
PUBLISHED BY BISCUIT S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