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이선경 2022.08.04 9
겨울밤은 
시누대숲에 사락사락 싸락눈 오는 소리를 들으며

겨울밤은 
가슴이 엷은 여자 쬐꼬맣고 메마른 맨발을 만지면서 

겨울밤은 
차거운 식혜를 마시면서 

겨울밤은 
먼 마을의 달밤 부엉이 소리에 귀를 모으면서

겨울밤은 
낙엽을 모아 달군 구들의 아랫목에서. 

헛간의 시래기 타래미 
바스락바스락
잠 못 드는 밤에 

새끼 밴 이웃집 염소 
추워서 우는 밤에 

가랑잎 소리뿐인 
마을이 있었다

바람소리뿐인 
마을이 있었다

서울발 하행열차
아, 기적소리처럼 문득
흔들리는 석유 호롱불빛들…

추녀 밑에 엮어 매단 
호박고지
탱탱 어는 밤에 

부엌바닥에 술 바탱이 
소리 없이 익는 밤에.

향은 좀 더 먼 곳으로부터 
아름다움은 좀 더 가슴 속으로부터 

촛불을 밝히면
조금씩 방안의 어둠이 밀려가듯이

찰랑찰랑 치마 아래 
새하얀 버선목이 눈부시듯이

사랑은 좀 더 아득하게
눈웃음은 좀 더 은은하게 

풀잎에 맑고 맑은 이슬
맺혀 있듯이 

저고리 밑에 복주머니 달랑달랑
매달려서 흔들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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