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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andum

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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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 앞에서 떨어진 사망 소식
고모는 주저앉은 채 버둥거리고
고개 숙인 사색 앞에 어둑한 의료진
그렇게 나의 아버지를 잃어
그 길어지던 이틀 밤 말년의 휴가부터
김포공항 cinema는 하필 Sky fall
갑자기 숨이 가빠지셨던 집 근처
거스름돈조차 뒤로 한 채 급히 닫히던
택시 문 12년의 가을
환자 대기실 틈에 웅크리던 시간과
치료 경과와 상관없이 성실한 낮과 밤
순식간에 모여준 아버지 형제 아마
침묵이 두려워 가끔 웃기도 했나 봐
마치 당연히 말끔하게 돌아와 줄 것처럼
한 번의 처절한 비명과 함께 모두의 곁을 떠
늘 괜찮다 말씀하셨던 기억을 꺾으며

그때 어릴 때
단칸방에 엎드린 채
갑자기 물었어 아빠의 꿈
너만 할 땐 총장 지금은
너희 낳고서 너희 낳고서
아들딸 잘 크는 게 내 꿈이야
그냥 더 아낌없이 줄 뿐이야
아빠의 꿈 이젠 너희 둘야

눈 감은 당신의 바로 누운 몸
잔상처럼 온기가 부정하듯 양손에 머물고
끝내 당신은 흰 수의 난 검은 상복
왼팔에 쓴 대신 빗줄기 감추는 약속
그저 헤맨 3일 속 소란이 메운 방
군대 동기와 간부 선임도 앉다간 밤
지나면 일가친척의 한탄이
꼭 나를 비난해 기어이
서열 이용한 뒤 챙긴 체통 진저리
외면해 빈소에 박혀 게워 내
칠이 벗겨진 당신의 공짜폰 최근에
쳤던 전화 문자엔 자식 이름이 두 개
타다 만 후회가 다시금 그날을 메꾸네
요즘 따라 몸이 좀 아프시단 말에
검진 때 안 좋았던 건 병원 가셨냐 했지
그건 다 괜찮아졌다고 걱정 마
휴가 때 나오면 007 영화 보자 했지

그때 어릴 때
깜빡 졸다 눈 뜨일 때
잠이 든 누나 옆자리에
말 없는 엄마 아빠는 앞자리에
차가 막혀서 차가 막혀서
다들 기운이 빠진 것일 뿐이야
둥근달이 환히 비추는 중이야
누구 발이 빠를까 내기 중이야

심지어 당신과 연락이 닿을 줄은
찌푸린 두 눈 불가피함에 화가 난 물음
십몇 년 만인가 엄마란 사람을 본 게
정리 안 된 반지하 셋이 한 끼를 먹재
짐이라고 생각했지 난
웬 부모 행세에 솟구치던 계기판
근데 왜일까 당신의 언행이 예전 같지 않아
허공 독백을 하고 벽에다 글씨를 박아
채무 포기에 답 없는 전역도 모자라
정신병원에 입원할 생모를 떠안아
다시 눈을 뜨는 이유가 사라진 방황과
죽음이 앙금이 애증이 합친 가난
쓰러짐의 반복이던
술에 마비돼 토하고 싶던
어떤 날에 매정하게 마무릴지어
불타버렸어 그대가 암이 퍼졌단 전화 소리로

애증이라고 그 모든 게
버젓이 떠나놓고 망가져 있는 당신을 보는 게
애증이라고 내 목을 조르네
돌아누운 이기심마저 처량해 지켜보는 내내

질린 병원의 향과 보호자의 탈
모아놓은 돈 박살 내던 아들딸
고된 통원을 부축하며 난 말이 없었지
몇 시간짜리 버스 열 살 언저리 멈춰진
당신의 기억에 대답하기 역해서
엄마 자격도 없다는 말도 꺼냈어
공격에서 한숨에서 미안하단 고해성사
듣고 약이나 좀 먹으라고 했어
당신의 머리카락이 하나둘 빠질 때쯤
당신이 머물던 집에 짐과 방을 뺐지
거미줄 가득해 지샘이 아픔이 맺힌
집안 모습과 너덜한 공책 안에 새긴
자식 이름 둘 마침내 마주한 수술
빨간불 앞에 외할머니 손가락 주름에
묵주를 에 둘리시며 기도해 감은 눈
속에 유난히 오래가던 불안함 끝은

나 어릴 때 만 원짜리 쥐여주고 문을 잠가
핏줄을 끊었던 모진 사람과 번갈아
겹쳐 보이는 커튼 속 나약한
손을 떨며 눈물이 고인 한 여자가
깊은 잠을 잤어 숨을 쉬면서
가라앉은 박동에 가슴 쓸었어
그때가 돼서야 읊조렸어
엄마 사실은 나도 보고 싶었어

그때 어릴 때
어둠들이 날 덮칠 때
미워했었는지도 몰라
가끔 나 미소를 못 골라
너무 다쳐서 너무 다쳐서
잠시 눈앞이 까만 것일 뿐이야
그저 사랑했었는지도 몰라
그저 사랑이었는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