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정보

Enter

Enter (Feat. gnoo)

공유하기
굳게 닫힌 문
밖에선 열지 못하는 문
안에서 열 생각이 없다면
절대로 열릴 리가 없는 문
문고리가 고장 나서
주말에 흔한 웃음소리마저
그에겐 딴 얘기 같아
내가 식사하시라고
문 앞에서 노크할 때아니라면
조그만 방에서 조그만 모니터
화면에 조그만 바둑알로 채워
예전엔 담배연기로 다 빼곡
어쩐지 그 방엔 이상한 냄새가 뱄어
그가 나가고 없는 날에는
난 괜히 그 방에서 하루를 지냈어
아마 내 방이 없어서 그랬어
그가 안 오길 원했어

끝이 없다는 건
시작도 없다는 것
끝이 뭔지 알게 됐어
난 몰랐는 걸
끝이 없다는 건
배울 수 없다는 것
끝이 뭔지 알게 됐어
볼 수 없다는 것

늘 비어있던 방엔
내 놓친 걸음 안에
밟기 싫던 그림자와 날
닮은 그대가
살아있네 나조차 모르게

내가 아마 16
부산에서 외국으로 Far From Home
그제서야 다른 애들처럼
부모님과 살아 그리고 내 방도 있어
멀리 떨어지게 된 할머니랑 이모가
걱정할까 봐 잘 적응해서 살고 있었지
그래 그는 내 속에서 잊혀졌었지
이모 말로는 그도 떠난다고 했었지
난 진짜 못된 새끼
그럼 부산에 놀러 가도 안 계시겠지
라며 괜히 그를 경계해댔지
왜인지 알려고도 안 했지
가부장인 그가 트라우마가 됐는지
그가 나를 부르면 난 이모 뒤에 숨지
그런 내가 남자답지 못하다며 웃지
그땐 그게 그의 표현법인지 몰랐지
이제 알아봤자 늦지

끝이 없다는 건
시작도 없다는 것
끝이 뭔지 알게 됐어
난 몰랐는 걸
끝이 없다는 건
배울 수 없다는 것
끝이 뭔지 알게 됐어
볼 수 없다는 것

늘 비어있던 방엔
내 놓친 걸음 안에
밟기 싫던 그림자와 날
닮은 그대가
살아있네 나조차 모르게

머리가 좀 컸다고 난
혼자서 서울살이가 썩 나쁘진 않아
밥상에 밥그릇이 한 개인 것도
이젠 익숙하잖아
그때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
울먹이는 소리의 우리 엄마
지금 바로 부산에 내려가
혼수상태인 그를 혼자 돌보시는
할머니 좀 챙겨드리고 온나
그리곤 새벽에 병원 도착 Shit
어렸을 때 무서워 보였던 우리 삼촌
작지만 강해 보이는 풍채는 어디 갔어
목엔 호스 때문에 못하지 아무 말도
눈을 떠도 약 때문에 정신도 못 차려
그래도 나는 할머니께 괜찮을 거라고
말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
그리고는 얼마 못 가서
그렇게 삼촌은 사진 한 장만 남았어
한 장만 남았어
문도 활짝 열려있잖아
근데 사진만 남았어
삼촌의 머리 위 검은띠 두 줄
보기 전까지 이게 마지막인 줄 몰랐어
자식 하나 없는 우리 삼촌을 위해
같잖게 상주 노릇도 해봤어
미안하고 고맙다는 쉬운 말도 못 하고
그렇게 삼촌은 사진 한 장만 남았어

늘 비어있던 방엔
내 놓친 걸음 안에
밟기 싫던 그림자와 날
닮은 그대가
살아있네 나조차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