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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난 미지근하게 축제 (Studio Ver.)

오늘의 나는 (낭독) (studio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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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의 위선을, 어느 정도의 격식을,
어느 정도의 거짓을, 어느 정도의 허위를
매순간 표정과 태도에 묻혀가며 살아간다.
몸에 잘 밴다면 좋았으련만 예의를 다해
사람과 세상을 대할 때마다 뒷통수가 따갑고는 한다.
너는 지금 위선적이구나, 너는 지금 격식을 차리느라
여념이 없구나, 너는 지금 거짓을 말하는구나,
너는 지금 허위를 보고도 눈을 감는구나......
내 자신이 내 자신에게 들키고 꾸짖는다.
그게 쌓이고 쌓여 커다란 피로로 어깨를
짓누를 때가 이따금 찾아온다.
입고 먹고 말하는 나의 모든 행위들이 그저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나에 불과한 것만 같아서
생기를 다 잃고만 표정으로 거울 앞에 서서 세수를 한다.
잠이 든 얼굴마저 그렇지는 않을 거다.
모든 가면을 내려놓고서 나도 모르겠는
내 진심을 향해 깊숙히 빠져든다는 점에서
수면 시간을 나는 좋아한다. 잘 자고 눈을 떴을 때.
베개에서 머리를 떼어내고 이불을 걷고 일어날 때.
온 몸 관절의 나사를 조이는 시간.
다시 조립된 내 자신이 어제보다는 조금더
씩씩하게 살아가길 기원하는 시간.
다시 조금의 위선과 조금의 격식을 갖추기
시작하는 아침에는 약간의 인자함과 약간의
기대감과 얼마간의 낙관마저 겸비한 듯한
표정을 장착한다. 하루를 무사히 끝마친 늦은 저녁은
그렇지가 않다. 도가 살짝 넘은 듯한 허위와
거짓과 회한 같은 것으로 범벅된 표정을 얼굴에 쓰고
귀가를 한다. 무탈했지만 무사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얼굴이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여행이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원치 않는
방식으로 강화되고 있는 루틴을 끊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지만, 무게를 견딜 여력이 바닥났다는
자각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위선과 거짓과
허위도 질량이 있는 것 같다. 어느 정도의
힘이 있을 때에나 장착할 수 있는 모래주머니처럼.
오늘은 안경점에 다녀오기 위해 자전거를 탔다.
이 동네에서 5년 가까이 살았지만 요즘처럼
이 동네가 아름다워 보인 적은 없다.
여느 여행지보다 더 빼어난 풍경을 하고 있었다.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행지에서나 찾아왔던 홀가분한 얇음으로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그 누구의 무엇도 아닌
홀가분함으로 먼 하늘을 바라 보았다.
새 안경을 쓰고 바라본 거울 속 얼굴은 내가
좋아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의 긴장도
조금의 피로도 없는 맑은 얼굴.
영원히 이 얼굴로 지내고 싶지만, 얼마간이라도
이 얼굴로 지내보고 싶다. 그러려면 핸드폰을
꺼두어야 하고, 메일에 “감사하지만”으로 시작해 서
“죄송합니다”로 끝나는 거절의 답장을
자주 해야 할 것이다.
거절하는 괴로움이 나의 안온한 표정 속에
얹혀지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