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정보

오늘의 난 미지근하게 축제 (Studio Ver.)

미지근하게 (낭독) (studio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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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이 하고 싶어서 어떤 텐트를 사야 할지
친구에게 자문을 구했다. 친구는 어떤 텐트가
좋을지 말해주기 전에, 캠핑의 불편한 점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 것을 모두
즐겁게 견딜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 때에
텐트며 의자며 침낭 같은 것을 하나하나
장만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우선 자기 것을
빌려줄 테니 한번 다녀와 보라고 했다.
장비를 빌리러 간 날, 친구는 텐트를 치는 법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다가 내 표정을 살폈다.
나의 자신없음을 눈치채자 친구는 캠핑을 한번
같이 가보자 했다.
그날은 어떤 텐트가 내게 맞는지를 알아볼
겨를은 전혀 없었다. 텐트를 칠 때에 돕는
역할 정도만을 했기 때문에. 그 정도 역할만 해도
한여름에는 땀이 어마어마하게 흐른다는
정도만 알게 되었기 때문에. 텐트가 아니라
친구에 대해서는 아주아주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밤새 장작불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어서다.
꺼져가는 모기향에 다시 불을 붙이며.
빽빽하게 가득 찼던 별이 가장 먼 것부터
지워져가는 밤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리의 깊은 이야기들을 장작과 함께 태웠다.
허리가 아파 더이상 앉아 있을 수 없을 만큼이
되었을 때에야 우리는 텐트로 엉금엉금
들어가 눈을 붙였다.
친구는 일평생 가장 맛있게 먹은 라면으로
플리트비체에서 비를 쫄딱 맞고 숙소로 돌아와
끓여먹은 라면을 꼽았다. 으슬으슬 추워서,
뜨끈한 국물이라도 먹었으면 해서 여행 내내
고이 간직해온 라면을 개봉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라면을 끓여 밤참으로 먹었다.
나는 정글에서 나이트투어를 했던 이야기를 했다.
밤에만 나타난다는 야생동물들은 못 만났지만
나무 등걸에 붙어 있던 전갈이나 독버섯 같은 것들이
야광으로 여기저기에서 빛나던 모습을 보았는데,
숲도 별을 품고 있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고 했다.
친구는 마치 내가 그때 본 것들을 생생하게
보고 있는 양 환한 표정을 지으며 내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손전등을 손에 들고 냇가로 나갔다.
쪼그리고 앉아서 달빛을 받아 부서지는 윤슬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돌아왔다.
우리가 함께 했던 여행 중에서 친구는 단연코
우도에서 보낸 하룻밤을 최고로 꼽았다.
아무도 없는 자그마한 해변을 함께 거닐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던 옷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어갔던 일. 함께 밤수영을 했던 일.
그때 처음 ‘시원함’이라는 쾌락에 대해
눈을 떴다고 했다. 몸도 시원했지만 마음이,
그리고 머릿속의 무언가를 모조리 바다에
흘려보낸 것처럼 청량했다고 했다.
내가 어렴풋하게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장면을 친구는 세세히 낱낱이 들려주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서 지워져버릴 뻔한
기억 하나가 손전등을 비춘 듯이 환하게
도드라져 나타났다.
아침의 태양이 텐트 속에 온기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우리는 눈을 떴다. 양치컵과 칫솔을
양 손에 들고 어깨엔 수건을 두르고 세면대를
향해 함께 걸어갔다. 하나씩 꺼내놓았던 것들을
차례차례 트렁크에 실었다. 의자 두 개만을 남겨둔 채,
우리는 각자의 보온병을 두 손으로 감싸며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또 길고 긴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늘게 내리던 빗줄기가 드세어질 때에야
우리는 자리를 깨끗이 비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캠핑에서 돌아온 며칠 뒤, 친구는 내게 또 갈 의향이
있는지와 어떤 텐트를 사야겠다는
판단이 섰는지를 물어왔다. 나는 텐트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캠핑은
또 가고 싶다고 답했다. 친구는 그때 어떤 점에서
이 텐트가 유용한지, 그리고 단점은 무엇인지
하나하나 설명해주었지만, 은하수를 십수 년만에 처
음 본 것만 기억이 난다고 나는 대답했다.
아무래도 한번 더 캠핑을 같이 가달라고 졸랐다.
친구는 내가 끓인 라면을 한번 더 먹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미지근하게 답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