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정보

오늘의 난 미지근하게 축제 (Studio Ver.)

에필로그 (studio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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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엔 커튼을 닫고 불을 끄고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웠을 때에, 오늘 하루 참 좋았다,
하고 빙그레 웃으며 잠이 들었다.
깊고 달게 잠이 들었다. 두번째 태풍이 지나가고
푸른 하늘 속에 떠 있는 하얀 구름이 오늘 하루도
잘 지내라는듯이 떠있는 아침.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하루를 보냈을 때에 하루가 좋았다는
느낌이 드는지를 헤아려보며 아침 커피를 마셨다.
잘 지낸 건 어제지만 몸이 개운하고 머리가
맑은 건 오늘이다. 책을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한 채로 부산하게 지낸 하루는 못마땅하다.
잠깐의 짬으로라도, 두어 페이지라도,
책을 읽고 머리에 맴도는 질 좋은 문장을
마주친 하루가 좋다. 어제는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철학자 김진영 선생의 산문집
〈아침의 피아노〉를 펼쳐보았다.
7쪽까지 읽고 잠시 책을 덮었다.
“내가 존경했던 이들의 생몰 기록을 들추어 본다.
그들이 거의 모두 지금 나만큼 살고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나는 살 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
이 문장 속에 사용된 단어 하나하나가 귀하게
나에게 박혀왔다. ‘존경했던’이라는 말과
‘존경해온’이라는 말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했다.
누군가가 다시 찾은 존경심에 대하여.
날이 개인 오늘 아침의 하늘처럼 새삼스레
무언가가 맑게 복원되는 순간에 대하여.
이렇게 상기하게 되는 일들은 되찾는 것과
다름없다. 저자가 되찾았을 존경심이
비 온 끝의 무지개처럼 담대히 한쪽 하늘에
걸려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단어.
“누린 것이다”라는 말이 가장 짙게 감촉되었다.
“나는 살 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 누렸다는
표현을 과연 나도 쓸 수 있을지 가늠해본다.
아직은 못 그럴 것 같았다. 나에겐 “생을 버텼다”
혹은 “생을 견뎠다” 같은 좀더 아픈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나는 육체를 많이 사용한 날을 좋아한다.
세탁기에 집어넣을 수 없는 빨래를 쪼그리고
앉아 팔을 써서 벅벅 비벼본 날도 좋고 몸이
노곤노곤해질 만큼 오래 걸은 날도 좋다.
땀을 뚝뚝 흘리며 베란다의 묵은때를 말끔히
씻어내린 날도 좋고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누군가와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운동을
하게 되는 날도 좋다. 그럴 때는 햇볕 아래여야 한다.
그늘 아래 드는 순간이 소중해질 만큼의
땡볕 아래면 더 좋다.육체를 사용할 때에는
상념이나 걱정 같은 것을 동반하지 않기 때문에 좋다.
육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는 무념이 좋다. 무심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날이면 으레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시간 괜찮으면 같이
배드민턴 칠래?”하고 물어보곤 한다.
무심하기 위해 민첩한 방향전환을 꾀하는
실천력을 나는 좋아한다.
파 한 단이나 양파 한 망을사와서 식재료를
손질하고 소분해서 잘 보관해두는 일을 좋아한다.
내일과 모레, 앞으로의 날들을 위해 작은
노동을 미리 해두는 기쁨이 있어서 좋아한다.
한참 잊고 지낸 이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걸어보는 일을 좋아한다. 그냥 걸었어,
라고 말하면서 이런저런 안부를 묻고 걱정을
나누고 응원을 보내며 저쪽의 목소리와 호응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미뤄두었던 일 하나를
소박하게 해치우는 것도 좋아한다.
창틀의 먼지와 유리창의 얼룩을 지운다거나
창고정리를 하면서 안 쓰는 물건을
버리는 걸 좋아한다. 어제는 유효기간이
지난 알약과 연고, 그리고 모아둔 몇 개의
아이스팩, 폐건전지와 고장난 소형가전
한 개를 들고 주민센터에 갔다. 주민센터
입구에 마련된 분리수거함에 버릴 것을
버리고 돌아서면 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은
한껏 상쾌하다. 어제는 해가 질 때까지
이 좋아하는 일들을 차례차례 행하면서 지냈다.
잠이 들 때까지 읽고 쓰는 일을 했다.
오늘도 어제처럼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생을 누렸다”라는 표현이 내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