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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선과 선원들 (Danpyunsun And The Sailors)

앨범유형
정규앨범 , 락 / 가요
발매일
2014.10.08
앨범소개
단편선과 선원들 [동물]
 
앨범 소개
[동물]은 4인조 그룹 '단편선과 선원들'의 첫 번째 앨범이다. 단순하지만 앨범 제목이라 하기엔 직관적이지 않은 [동물]에는 육체가 가득하다. 숨 쉬고 울부짖고 으르렁거리며 뛰어다닌다. 앨범에 담긴 모든 소리는 인간의 몸과 도구가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며, 때로는 서로 예민하게 갈등하는 와중에 녹음되었다. 전기적인 증폭을 자제하는 대신 각 악기의 물리적인 한계를 쥐어짜듯 연주되어진 어쿠스틱 기타, 바이올린, 퍼커션, 베이스는 각 곡마다 다양한 변주를 들려주고 있지만, 곡들은 과장되어있지 않고 담백하다. 필요한 곳에서 제 기능을 하는 음들이 선명하게 배치되어있으며, 곡의 또렷한 모습을 위해 혼란스럽고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이 매끄럽고 지능적으로 사용되었다. 대지에 웅크린 사자처럼, 창공에서 날개를 펼친 군함조처럼 모든 동작이 제 자리에 있다.
 
[동물]은 매우 선명한 이미지들을 청자에게 건넨다. 난해한 가사와 박자와 화성을 무시하며 자유롭게 확장되는 연주가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는 순간에도 [동물]은 또렷하게 움직인다. 이 작업을 선원들이란 이름의 동물을 스타디움에 풀어놓고 다각도의 UHD 카메라로 찍는 다큐멘터리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카메라에 담긴 동물의 동작은 완전하게 낯선 것도, 익숙한 것도 아니다. 한국의 옛 가요, 영미권의 언더그라운드 포크, 아방가르드, 클래식, 집시음악, 익스페리먼틀 록, 3세계의 여러 비트뮤직들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이 움직임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을 닮기 위한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쪽에 가깝다. 엉키고 뒤섞여 곤죽이 된 연주와 냉정을 유지하며 하이파이하게 동작을 담아내는 레코딩 사이에서, 선원들은 모순을 피해가는 대신 정면을 치받으며 충돌을 에너지로 발산한다.
 
[동물]에는 2007년부터 2013년까지 회기동 단편선이 솔로 활동을 하며 발표한 앨범에서 골라 다시 작업한 곡들과 선원들을 만나 함께 새로 쓴 곡들이 담겨있다. 새로 쓴 곡들을 제외하더라도, 앨범에 담긴 음악은 이제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고 다시 만든 음악이기 때문이다. 선원들은 단순히 연주를 보탠 것을 넘어 음악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그것은, 누구 말마따나, 음악에 있어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 갓 완성된 한 마리의 헐떡이는 [동물]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되고 또 듣는 이에게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는 시간이 지난 후에 구체화될 것이다. 이제, [동물]은 단편선과 선원들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다.
 
수록곡 소개
* 모든 곡의 작곡, 작사는 단편선이 맡았다. 모든 곡의 편곡은 단편선과 선원들이 맡았다.
 
1. 백년
회기동 단편선이 2010년 작고한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쓴 곡이다. 여든 해가 조금 더 넘게 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삶을 어땠을까를 상상하며, 과연 그 분은 삶을 마치는 그 날 자신의 삶에 대한 모든 대답을 얻었을까를 생각하며 썼다. 추운 겨울, 남자는 집을 나서, 어두운 산을 오르다 넘어져 그제야 솟아오르는 동을 바라본다. 회기동 단편선의 첫 번째 앨범 [백년(2012)]의 오프닝이었으며 선원들과의 공연에서도 곧잘 첫 곡으로 쓰였다. 도입부와 종결부의 변화가 선명하고 스펙터클한 곡이다.
 
2. 공
[동물]의 타이틀 곡. 인간의 역사, 의지, 신과 우주, 그리고 필연적으로 도래할 파국에 대한 이미지들을 추상적으로 담아냈다. ('공'이라는 제목은 중의적으로 공허함Emptiness 과 공Ball 을 모두 뜻하고 있다. 제목을 번역할 땐 A Ball 로 번역한다.) 곡이 끝났을 때 도입부가 어땠는지 생각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동세의 변화가 가파른 곡이다. 할퀴고 웅크리고 뛰어올랐다 쭉 뻗는다.
 
3. 노란방
자신조차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쓰기 위해선 자신조차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해야했다. 이 곡의 가사는 소리를 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즉흥적으로 작성되었다. 회기동 단편선이 2013년 발표한 [처녀]에선 아프리칸 리듬을 활용한 실험적인 일렉트로닉에 가까웠다면, [동물]에선 선원들을 엄격한 연주를 통해 훨씬 더 빠르고 경쾌한 리듬과 더욱 깊어진 비감이 함께 담긴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 곡에서 거의 유일하게 뜻을 유추할 수 있는,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라며 청자를 밀어붙이듯 반복하는 절규의 뒷맛이 길다.
 
4. 소독차
도시, 특히 새로 건설된 시가지에서 자란 이로서 어렸을 때 잊을 만하면 멀리서 붕 소리를 내며 달려오던 소독차의 기억을 되새기며 쓴 곡이다.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귀엽게 연주되었지만 절과 절을 잇는 브릿지로서 활용되는 우울한 무조의 코러스가 어린 아이 특유의 무구하면서도 불안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5. 순
[동물]을 통해 처음으로 발표되는 단편선과 선원들의 신곡이다. 그간의 곡에서 자주 활용되곤 하던 주제인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에 관한 메시지를 4인조 편성에 최적화된 스트레이트한 포크 록 사운드에 담았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곡 안에서 이리저리 치받고 솟아오르는, 단편선과 선원들의 장점이 뚜렷한 곡이다.
 
6. 황무지
가장 오래 전에 쓰인 곡으로서 회기동 단편선이 2007년에 발매한 [스무살 도시의 밤]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앨범에 담긴 곡 중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팝 음악에 가까운 트랙으로서, 회기동 단편선의 오래된 팬이라면 그의 소박한 시작과 단편선과 선원들의 새로운 음악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소독차'와 마찬가지로, 개발이 끝나지 않아 대부분 황무지로 남아있던 신시가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가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를 보며 느낀 감정에 대해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7. 언덕
이 곡을 연주하는 일은, 일종의 제사를 드리는 일과 매우 닮아있다. 인간의 육체에서 비롯되는 한계와 육체를 뛰어넘는 의지가 서로 충돌하며 알 수 없는 희열로 승화되는 과정을 주술적으로 담아냈다. 회기동 단편선의 첫 번째 정규앨범인 [백년]을 발표한 직후부터 연주되기 시작한 대곡으로서 2013년 발매된 [처녀]에서는 목소리와 기타 한 대라는 최소한의 편성으로 녹음되었다. 애초에 [처녀]는 제작을 시작할 단계에선 EP가 아닌 demo의 포맷으로 발매될 예정이었던 만큼, [동물]에 담긴 버전을 원래 의도를 온전히 구현한 공식적인 버전으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 숨 가쁜 진행, 난해한 가사, 변화무쌍함, 장중한 전개 등 단편선과 선원들이 지향하는 음악적 지향의 일면을 또렷이 보여준다.
 
8. 동행
사랑 노래로도 읽히곤 하지만 기본적으론 가족, 그리고 젊은 나이에 돌아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 담긴 곡이다(물론 사랑 노래이기도 하다). 부드럽고 서정적이며 호젓한 긴장이 살랑거린다. 9분에 가까운 플레이타임 동안, 각 악기들이 차분하게 대화를 풀어놓으며 서로를 어루만진다. [백년]의 실질적인 마지막 트랙이기도 했던 이 곡은 마치 끈질긴 위무 끝에 모든 것을 껴안듯, 충만한 감정으로 부풀어 오르며 그 끝을 맺는다.
 
9. 우리는
[동물]에 실린 마지막 곡이자, 앨범을 위해 단편선과 선원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쓰고 연주한 새로운 곡이다. 단순하게 연주된 이 곡은 마찬가지로 단순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곡은 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된 친구들을 위한 곡이다. 함께 걸어가는 풍경과 감정,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씩씩한 리듬 위로 펼쳐진다. '눈이 오는 밤'으로 시작된 이 앨범은 나지막이 발음되는 '평화'라는 짧은 단어 하나로 매듭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