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TREADMILL

TREADM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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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CALE

앨범유형
싱글/EP , 락 / 가요
발매일
2017.10.17
앨범소개
그랜케일 『Treadmill』 EP

록 밴드 그랜케일(Grancale)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에 대한 추앙을 숨기지 않는다. 
그랜케일에게 레드 제플린은 리메이크의 보고처럼 취급되는 초기 네 장은 물론, 표현력이나 창작력에 있어 록의 범주를 가벼이 뛰어넘기 시작한 『Houses of the Holy』(1973)이후의 음악에서 받은 영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같은 그랜케일의 성향은 첫 작품이었던 『Disgrace And Victory』(2012) EP 이후 무려 5년 만에 선보이는 『Treadmill』 EP에서 더욱 선명히 나타난다. 두 가지 버전의 「Treadmill」을 포함해 총 네 곡을 포함하고 있는 이번 EP는 그랜케일의 완결된 앨범에 대한 갈증을 더욱 부추기는 멋진 노래로 채워져 있다.  

EP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 힘을 뺀 「For Your Life」나 「Hot Dog」 혹은 에어로스미스(Aerosmith)나 블랙크로우즈(the Black Crowes)를 연상시키는 하드록 성향의 전반부와 포크-록 성향의 「Treadmill」로 이뤄진 후반부다. 전반부는 심플하지만 밴드의 연주력을 엿볼 수 있는 탄탄한 곡의 그루브가 듣는 맛을 배가시키고, 후반부는 풍부한 기타 소리가 차분하고 아름답게 청자를 감싼다. 두 가지 다른 성향이 교차되는 지점은 레드 제플린이다. 
그러나 레드 제플린의 레플리카를 들을 것이라 재단하지 않기 바란다. 레드 제플린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그랜케일의, 그랜케일에 의한, 그랜케일식 노래다. 

드러머 김태우의 연주는 복잡한 리듬을 만들기보다 심벌의 효과적인 사용과 적절한 생략으로 선 굵은 그루브를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는 박용진이 만드는 기타 연주에서도 확인되는 지점이다. 이전의 EP에서라면 화려한 슬라이드 기타 솔로를 걸지게 채워 놓을 법한 순간에도, 밴드는 리듬 커팅으로 만든 리프의 즐거움을 강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기타 솔로 대신 박진감 넘치는 드럼 필인이 들어오기도 하고 거친 화음의 코러스를 반복하기도 한다. 그만큼 그랜케일의 음악은 외적인 화려함보다 단단한 팀워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전반부의 두 곡 「Foggy」와 「Here for You」에서 들을 수 있는 톤은 앰프의 게인과 기타 볼륨으로 만들어진 담담하고 원초적이지만 힘이 느껴지는 소리다. 『Disgrace And Victory』에 비해 훨씬 슬림해진 톤이기에 일견 단순하게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연출하려고 보면 이렇게 담백하면서도 뒷심 있는 톤 메이킹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타리스트 박용진의 노력과 이를 녹음으로 구현하고자 한 최정선 엔지니어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다. 천정식의 목소리는 이러한 밴드 사운드의 질감에 쩍쩍 달라붙는다. 담백한 악기 소리에 살짝 기름지고 거친 톤의 보컬이 만드는 균형감은 소위 아메리카나 계열의 밴드가 연상될 정도다. 베이시스트가 없는 밴드의 상황을 오버더빙이나 세션 없이 그대로 드러낸 사운드는 오히려 민낯의 자신감처럼 들린다.  

하드록에 기댄 두 곡에 이어지는 두 가지 형태의 「Treadmill」은 앞서와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다.
그랜케일은 곡을 만들며 닉 드레이크(Nick Drake)나 펜탱글(Pentangle)과 같은 브리티쉬 포크의 감성을 담고 싶었다고 전한다. 이를 위해서 밴드 버전에는 버트 잰시(Bert Jansch, 펜탱글 창립 멤버)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포크 뮤지션 드린지 오(Dringe Augh)와 협연으로 다채롭고 풍부한 사운드를 창출해냈다. 

흥미로운 점은 포크를 추구하는 곡임에도, 자연스레 레드 제플린의 감성이 묻어난다는 사실이다. 밴드 그랜케일의 음악이 어떤 바탕 위에 현재와 같이 만들어진 것인지 숨길 수 없는 대목이다. 청자에 따라서는 어쿠스틱으로 연주하는 크리스 로빈슨 브라더후드(Chris Robinson Brotherhood)의 감수성을 짚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캘틱의 감수성을 싸이키델릭한 방식으로 표현했던 브리티쉬 포크에서 자주 쓰던 코드 진행과 블루지한 손버릇이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그랜케일 멤버들의 연주가 빚어낸 결과다. 이러한 성격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박용진의 기타 연주다. 밴드 버전에서 박용진은 12현 어쿠스틱 기타(6현 기타는 드린지 오)를 연주하는데, 12현 기타 특유의 맑은 소리 사이로 블루스의 감성이 묻어난다. 
마치 지미 페이지가 캘틱의 요소를 가져와서 레드 제플린의 느린 곡을 만들었지만, 델타 블루스가 연상되는 손버릇이 나오는 것처럼. 

천정식과 드린지 오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 것도 흥미롭다. 앞서의 록킹한 곡에 비해 여기서 들을 수 있는 천정식의 발성에는 레인 스탤리(Layne Staley)의 굴곡이 묻어난다. 천정식이 이끄는 보컬에 더해지는 드린지 오의 사이키델릭한 울림(그래서 브리티쉬 포크의 기운이 서려있다고 평가되는)이 있는 목소리는 천정식과 다른 결의 굴곡이다. 그래서 둘이 함께 부르는 노래는 단순히 화성을 쌓으며 만드는 코러스와는 다른 종류의 부피감이 형성된다. 이번 EP에서 가장 짜릿한 장면 중 하나다. 

밴드 버전은 드린지 오의 기타 인트로로 시작, 12현 기타의 박용진, 천정식의 리드 보컬, 드린지 오의 코러스에 김태우의 드럼이 더해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김태우의 드럼은 어쿠스틱과 포크 특유의 침잠하는 분위기를 따라가고 있으나 12현 기타의 짧은 솔로가 그러하듯, 순간적으로 빛나는 필인과 깊은 울림의 심벌 워크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처음 두 곡과 마찬가지로,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연주력으로 긴장감이 배가되는 구성이 빛난다. 

그랜케일은 마치 라이브를 하듯 원 테이크로 레코딩을 진행했다. 특히 「Treadmill」은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같은 부스 안에서 그대로 녹음되었기에 악기들 사이에 잔향이 서로의 소리를 타고 들어가기도 한다. 
기타 소리조차 왼손 뮤트와 오른손 스트로크의 강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가감 없는 정직한 밴드의 실력이 오롯이 드러나고 있다. 소스가 그러한 방식이었기에 믹싱을 거쳐도 라이브의 현장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단 네 곡이 실려 있음에도 감동의 깊이는 얕지 않다. 레드 제플린의 다양한 음악 세계와 미국 서던록의 현재를 아는 이들에게는 더욱 진하게 다가설 음악이다. 그렇기에 갈증은 더해진다. 빠른 시일 안에 정규 앨범을 통해 속 시원하게 밴드 그랜케일의 음악을 양껏 느끼고 싶다.         

조일동 (음악취향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