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정보

안전지대

튤립에세이 (안전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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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렌트카입니다. 아니, 렌트카였어요.
지금은 중고차 전시장에 나와있습니다.
달린지는 꽤 오래 된 것 같아요.

나는 새것이라기엔 너무 많이 굴러다녔고,
골동품이라기엔 일말의 가치도 없습니다.
나의 과거를 알고 나면
나를 보러 온 사람들은 쉽게 돌아서더군요.
나는 원래 그런 차일 뿐인데 말이에요.

그래도 난 추억이 많아요.

이제 막 대학생이 된 네 명의 친구들,
직진도 위태한 단 한 명의
운전면허증 소지자.
세 번의 평행주차 시도 끝에 뒤차 아저씨가
내리지 않았다면 그 골목은
계속 멈춰있었을 거예요.
차 나갈 때도 필요하면
연락하라던 아저씨 덕분에
깔깔거리던 웃음소리가
아직도 울리는 것 같아요.

여자친구와 처음 떠나는 여행에서
여자친구가 정성스레 까준 귤 한 조각조차도
입에 넣는 것이 힘들어 애써 사양하던,
휴게소까지 핸들을 적셔가며
식은땀을 흘리던 청년도 기억이 납니다.

햇살만큼은 따뜻하던 어느 겨울날,
파도 소리가 귀를 에던 바닷가에서
더 이상 늙을 수 없는 어머니를 등지고 앉아
한없이 울던 노동자도 기억해요.

나는 누군가에게는 시작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었던가봐요.

이렇게 보면 사람들도 똑같이
마음을 빌려주고 받으며 사는 것 같아요.
그걸 추억이라고 부르는 것 같고요.
나도 그저 이런 추억들을
안고 살아갈까 봐요.

더 이상 사람들이 날 보지 않았으면 해요.
렌트카였다고 돌아서는 뒷모습도 싫어요.
나는 그냥 나여서 좋았어요.
이대로 좋아요.
달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는 그래도 차예요.
그냥 차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