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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 Yorke [Confidenza]

스페셜

라디오헤드에서 스마일, 그리고 영화 음악가로 끊임없이 변신을 추구하는 예술가, 'Thom Yorke'

SPECIAL라디오헤드에서 스마일, 그리고 영화 음악가로 끊임없이 변신을 추구하는 예술가 Thom Yorke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밴드인 라디오헤드(Radiohead)는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기본적으로 좋은 음악을 만들었지만 시대 변화에 발맞춰 음악적 패러다임을 바꿔내면서 항상 가장 앞에 위치해 있었다. 각자의 색깔을 갖춘 다섯 명의 멤버들이 근 30여년 동안 멤버 교체 한번없이 매회 놀라운 앨범들을 쏟아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음악사적으로도 몹시 드문 일이었다. 라디오헤드의 절망적이고 소외된, 그리고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적극 드러낸 노래들은 역으로 다양한 이들을 매혹시켜냈다.

 

'라디오헤드의 목소리'라 할 수 있는 보컬리스트 톰 요크(Thom Yorke) 는 밴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라디오헤드의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톰 요크 또한 밴드 활동과는 별개의 솔로 활동을 전개해갔고 그것들은 모두 훌륭한 작업물로써 귀결됐다. 희미한 고음과 불안에 떠는 저음 사이 톰 요크의 어둡고 편집증 적인 암시들이 솔로 작업물들에서도 두드러졌는데 마치 삶은 깨어 있는 악몽이라는 듯 미묘하고 복잡한 레이어를 갖춰낸 설명 불가능한 사운드가 지속됐다. 단순해 보이는 것부터 완전히 초현실적인 것까지 라디오헤드, 그리고 톰 요크의 작업물들은 불안정하지만 동시에 풍부하면서도 따뜻한 질감을 갖춰내고 있었다.

톰 요크의 첫번째 영화음악 [Suspiria]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포영화 중 하나인 다리오 아르젠토(Dario Argento)의 1977년 작 [Suspiria]의 리메이크 프로젝트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의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 그리고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가 합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영화는 물론 사운드트랙 또한 사람들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킬만한 결과물로 완성됐고 톰 요크는 성공적인 영화음악 감독 데뷔를 완수해냈다.

물론 여기에도 확실히 어둠이 존재했지만 기존 라디오헤드와는 다른 결의 어둠이었다. [In Rainbow] 시기의 날카로운 보컬과 피아노의 조합을 지닌 가창 곡 'Suspirium'은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비주얼 미디어 작곡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또 다른 가창 곡 'Unmade' 또한 'Suspirium'과 비슷한 맥락을 지니고 있으며 최면에 걸린 듯한 'Open Again'의 연약한 섬뜩함은 톰 요크에게 있어서도 새로운 종류의 소리였다. 14분에 달하는 드론 트랙 'A Choir of One' 또한 어둠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무시무시한 여정을 선사했다. 영화와 완전히 분리해놓고 보았을 때도 꽤나 독립적인 체계와 야심으로 무장한, 톰 요크의 별개의 정규 작업물이라 분류해도 크게 무리 없는 작품이 됐다.

톰 요크, 그리고 그의 스마일의 음악을 다뤄낸 TV 시리즈 [Peaky Blinders]

2019년 무렵 에드워드 노튼(Edward Norton) 주연의 영화 [머더리스 브루클린(Motherless Brooklyn)]에서 신곡 'Daily Battles'를 공개한 톰 요크는 또 한 번 영상물에 음악을 제공한다.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킬리언 머피(Cillian Murphy) 주연의 범죄 시대극 [피키 블라인더스 (Peaky Blinders)]를 위해 곡을 쓴 것인데, 그는 극의 마지막 시즌을 위해 두 개의 오리지널 곡을 제공했다.
‘영국판 대부’라 불리는 걸작 TV 시리즈 [Peaky Blinders]의 수록곡들의 경우 톰 요크의 이름으로 발표됐지만 라디오헤드의 또 다른 한 축인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와의 공동작업으로 이뤄졌다. '5.17'은 [Suspiria] 시기의 멜랑콜리한 피아노와 같은 맥락의 색조를 띠고 있지만 보다 스산하고 차분한 느낌을 제공하고 있으며, 함께 공개된 연주 곡 'That's How Horses Are'의 경우 서정적인 부분이 유독 두드러졌다.
[Peaky Blinders]의 작업물들은 톰 요크와 조니 그린우드의 새로운 밴드 스마일에 대한 정체가 드러난 직후에 발표됐는데, 때문에 스마일의 곡 또한 [Peaky Blinders]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작품의 6시즌 마지막 에피소드인 “Lock and Key”에 스마일의 장중한 'Pana-vision'이 사용되면서 극의 위대한 마침표를 찍는 역할을 해냈다. 'Pana-vision'의 오피셜 비디오 또한 [Peaky Blinders]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참고로 스마일은 올해 두 번째 정규 앨범 [Wall of Eyes]를 발표하고는 6월 부터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톰 요크가 한 번 더 선사하는 불안한 아름다움의 은밀한 기록 [Confidenza]

앞서 언급한대로 [Suspiria] 이후에도 몇몇 영화에 자신의 신곡을 제공하기도 했던 톰 요크였고 많은 이들이 [Suspiria] 이후 또 다른 영화음악 작업물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드디어 그의 새로운 영화음악이 공개됐다. 톰 요크가 영화 음악 총 감독을 담당한 두번째 작품 또한 [Suspiria]의 루카 구아다니노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출신 감독과의 작업이 됐다.

 

이탈리아의 중진 감독 다니엘레 루케티(Daniele Luchetti)의 2024년도 영화 [Confidenza(영어 제목 "Trust")]는 국내에 [끈]이 번역되기도 했던 소설가 도메니코 스타르노네(Domenico Starnone)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2024년 1월 무렵 톰 요크가 [Confidenza]의 영화음악을 담당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4월 초에는 1분 길이의 영화 예고편이 공개됐다. 예고편에서는 대사보다 톰 요크의 음악이 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감독 또한 대본을 작업할 당시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사실을 담으려 했다 언급한 만큼 톰 요크의 음악이 무척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감독은 [Confidenza]에서 언어적 소통보다는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강조하려 했다. 톰 요크 또한 이에 대해 즉시 이해했다며 감독은 덧붙이고 있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동시에 캐릭터의 두려움을 우스꽝스러운 형태로 만드는 방식을 찾았으며 오히려 톰 요크의 창의성은 감독의 욕망을 넘어서기도 했다고 한다. 감독은 영화음악 작업에 대한 톰 요크의 세심함과 정확성 또한 극찬했다.

 

[Confidenza]는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고등학교 교사 피에트로가 과거 자신의 학생 테레사와 불륜관계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는 자신의 약점에서 벗어나 결국 가면이 벗겨지는 것을 바랄 수밖에 없는 현대 남성의 초상을 그린다. 영화는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에서 초연됐으며 4월 24일 이탈리아에서 개봉된다. 톰 요크가 담당한 사운드트랙은 4월 26일 디지털로 발매되고 7월 12일에 바이닐 포맷과 CD가 발매될 예정이다. 유화풍의 커버 아트웍이 무척 아름답기 때문에 바이닐 레코드를 구매하는 것 또한 추천할 만하다.

스마일의 작업 당시 색소폰을 담당했던 로버트 스틸만(Robert Stillman), 스마일스의 드러머 톰 스키너(Tom Skinner), 그리고 라디오헤드와 스마일의 앨범은 물론 [Suspiria]에서도 함께했던 지휘자 휴 블런트(Hugh Brunt)와 런던 컨템포러리 오케스트라(LCO)가 [Confidenza]의 음악 작업에 합류했다. 참여진만으로 보면 스마일 프로젝트의 연장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Knife Edge

 

앨범에 수록된 가사가 있는 두 곡 중 하나로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들인 엘리오 제르마노(Elio Germano)와 페데리카 로셀리니(Federica Rosellini)가 비디오에 등장한다. 예고편에서도 잠시 들을 수 있는 심플한 피아노를 베이스로 톰 요크의 연약한 가성이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상기시켜주는 곡은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사운드 디자인 사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 갈등하는 내용의 가사를 담아냈다. 이 곡의 비디오와 함께 컨템포러리 재즈 풍의 'Prize Giving' 또한 동시에 공개됐다.

Four Ways In Time


최초로 공개된 영화의 예고편 마지막 부분에도 흘러나왔던 트랙. 스산하고 비극적인 오케스트라 연주 위로 톰 요크의 스산한 목소리는 마치 폭풍 전의 고요처럼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어느 인터넷 유저가 영화제 상영 당시 영화 마지막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 직접 곡을 녹음한 파일이 미리 돌기도 했다.

앨범의 첫 트랙 'The Big City'는 지난 2월 스마일의 BBC 6 뮤직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시리즈 플레이리스트에서 미리 공개됐던 곡으로 미니멀한 전자 효과음은 [Tomorrows Modern Boxes] 시기의 톰 요크를 떠올리게끔 한다. 관악기들을 중심으로 신비한듯 은은하게 흘러가는 'Letting Down Gently', 곧바로 이어지는 긴 호흡의 클라리넷 연주가 두드러지는 'Secret Clarinet', 그리고 ''Nosebleed Nuptials'의 앞부분이나 'Bunch of Flowers'의 경우 라디오헤드의 'Life In a Glasshouse'의 브라스 파트를 연상시키게 만든다. 불길한 드론 트랙 'In The Trees'와 'Nosebleed Nuptials'의 후반부 경우 예고편에서도 확인 가능했다.

 

미니멀한 노트로 점차 고조되어가는 'A Silent Scream ', 그리고 타이틀 트랙 'Confidenza' 같은 스코어의 경우 마치 비명을 지르는 듯한 현악기 피치카토를 뒤섞어 놓았으며, 프리 재즈처럼 귀결되는 'On The Ledge' 또한 톰 요크의 실험적인 측면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 부조화한 방향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은 공포나 스릴러식 문법이라기 보다는 혼란스러운 심상의 구현에 더 가깝다는 인상이다.

[Suspiria]부터 본 작 [Confidenza]에 이르기까지 톰 요크가 만들어내는 사운드트랙은 그가 여전히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동시에 즐겁게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음을 증명해낸다. 특히나 앨범에 수록된 실험적인 재즈 트랙들은 확실히 프리 재즈나 선즈 오브 케멧(Sons of Kemet)의 팬들에게 어필할 만하다.

 

기존 작업물들 보다 전통적이며 감정적인 동시에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태도는 새로운 청취 경험을 제공한다. 혈액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과장되고 뻔한 공포 따위는 없으며 오히려 이는 위태로운 상태를 피부로 체험하게끔 하는 행위에 가깝다. 독립된 하나의 앨범으로서도 의미가 있는 이 레코딩은 확실히 지금의 혼란스러운 시대에 차갑게 날이 선 개인의 관점에 보다 집중적으로 현미경을 들이 미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