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BE SOMETHING

BE SOMETHING

공유하기

치호

앨범유형
싱글/EP , 랩/힙합 / 가요
발매일
2018.12.08
앨범소개
BE SOMETHING EP

나에게 '무언가'인 너에게 '무언가'로 남고 싶다.

01. 여전히 여전해 (Feat. Alt, Zesty)

문득 드는 생각. 코가 가렵다. 바로 손가락을 코에 가져다 대고 싶었지만 맞은편에 앉아있는 친구가 내 얼굴을 보며 계속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녀석인데다가, 이야기하는 면전에서 대놓고 코를 파는 건 너무 실례 같아서 안절부절못하던 중이었다.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올 리가 없었다. 녀석이 말을 이어갈수록 코가 더 가려워지는듯했다. 아무래도 얘가 하는 말은 내 귀보다는 코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다시 녀석의 눈을 보면서 집중해보았다. 내가 버는 돈의 액수 때문에 열변이었다. 방금까지 하고 싶은 일 하고 사는 거 같아서 멋있다 하며 반짝거리던 녀석의 눈은, 이제는 두 개의 쉼표처럼 백만이라는 숫자 안에 갇혀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백만 원밖에 못 버는 거야? 질타라기보다는 안쓰럽다는 눈치였다. 나는 참지 못하고 콧구멍으로 손을 가져가서 코를 후비기 시작했다. 왕건이었다. 학원 강사, 과외, 라디오 피디 일 그리고 줄였던 잠까지, 나의 모든 노력들이 뭉쳐진 거대한 코딱지가 나왔다. 녀석은 내 코에서 나온 덩어리에 당황한 듯 보였다.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가는 그를 두고 나는 손가락을 퉁겼다. 오오 미안! 난 벌떡 일어나 휴지를 뽑아서 건넸다. 어떻게 그게 눈에 맞냐? 그러게 말이다.

02. Workin' (Feat. Caknow)

어? 이번에 대박 나면 어? 열 배로 갚을 테니까 가만히 좀 있어보라고 에잇! 나는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목적은 달성했으니 어찌 되던 좋다. 빌렸다 빌렸어, 그것도 잔뜩. 지금 와서 무얼 빌렸느냐 하고 물어본다면 그건 바로 시간이다. 남에게 빌려서까지라도 확보한 시간은 조금도 낭비하기가 싫었다. 나는 빠른 발걸음의 기세를 이어 곧장 작업실로 향했다.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노랗고 검은 돌들이 날아와서 내 휴대폰 화면을 두드린다. 음소거를 해둔 탓에 까똑까똑 하는 소리는 없지만 자꾸 빼꼼 거리며 얼굴을 내밀었다 들어간다. 손을 뻗어서 휴대폰을 뒤집었다. 답장을 할 수가 없다. 왜냐면 난 그 시간을 이미 빌려서 작업에 갖다 부었기 때문이다. 조금 켕기긴 한다. 그래서 더더욱 잘 돼서 열 배로 갚기 전까지 카톡을 확인하기 힘들다. 동래부사 송상헌 바이브로 달달 다리를 떨면서 작업 중인 화면으로 다시 눈을 돌린다. 죽기는 쉬워도 답장하기는 힘들다. 존나 멋있기 전까지는.

03. 너의 내일 (Feat. FR:EDEN)

가는 길에 맥주 한 잔. 떨리거나 그래서 마시는 건 아니야. 굳이 분류하자면 난 맥주가 술이냐 하며 농을 치는 그런 부류지. 맥주로 취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그냥 맛있어서 먹는 거야. 한 모금씩 축일 때마다 다리는 보다 더 가볍게 뻗어가더라구. 경쾌하게 찍히는 스텝 위에는 자신감이 남고, 그 자국은 나보단 남에게 더 잘 보일게 분명하겠지. 먼저 나를 알고 나서 나를 만난 사람들은 위아래로 두 번 쳐다보곤 해. 보통 래퍼라는 단어가 주는 질감과 달라서 그럴 거야. 그때마다 내 구두를 구두솔로 쓸어주는 느낌이야. 그 사람과 다시 눈이 마주치는 타이밍에 씩 웃어 보이고 맞다고 말해주면 그만. 그게 내가 생각하는 멋이라니까. 가는 길이라 했지만 사실은 오는 길. 너의 생각을 물으러, 너만 괜찮다면. 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게 뭐냐면.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 맞는 사람. 우린 내일을 만나진 않지 내일은 맞는 거니까. 해와 달도 맞이하는 거니까. 만남은 사소한 거라고 할 수 있어도 맞는 건 항상 좋은 것뿐이야. 그리고 일상에 있는 것들이지. 맞는 사람이 되게 해주지 않으련, 그럼 그 속에서 너는 빛날 거야 아마.

04. Interlude

인간의 몸에는 알코올이라는 부품이 없지만,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흔들리는 뼈마디 사이에 소주 병을 끼워 넣으면 우리가 튼튼하게 서지 않을까라는 착각을 한다. 선명하게 보였던 것들이 살짝씩 바래있을 때. 내가 찾았다고 생각해 주머니에 넣었던 것들이 어느샌가 없어져 있을 때. 작은 검댕이들이 머릿속에 번져 있을 때, 왠지 모르게 지워질 것 같아 알코올로 적셔 굳이 옷자락으로 비벼본다. 혼자 하는 생각이지만 혼자 마시기는 싫어서, 친구라는 녀석들에게 전화를 건다. 술집의 테이블마다 흔들리는 탑이 하나씩 세워져 있는 걸까. 무리마다 그날 하나씩 준비한 탑 주위를 돌면서 웃고 떠들며 마신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한다. 나는 금방 지쳐 쓰러졌지만 아직 친구들은 통일되지 않은 저마다의 춤에 취해있다. 나의 춤을 출 때쯤이 되자 친구들은 나를 부축해서 끌어낸다. 정신없이 기대앉은 뒷자리, 옆에는 탑이 하나 흔들리고 있다.

05. 너의 밤과 나의 밤은 같을 수는 없는 거야 (Feat. ZIPE KROCK)

탑을 보다 눈이 마주친다. 나의 얼굴이다, 거울을 보는 듯하다. 무릎을 몸 쪽으로 당겨 다리를 끌어안는다. 아무리 말을 갖다 붙이더라도 술자리는 술자리다. 테이블 위에 오고 가는 말들과 술 잔 위에 비친 우리들의 표정, 그중에 거짓은 없겠지만 무언가를 바꿀 만큼 진실되지는 않다. 그럼에도 너를 만나고 모든 것을 토로해야 한다. 너는 나의 말을 듣고 너에게 말을 건다. 나도 너의 말을 듣지만 나에게 말을 건다. 우리 사이에 오고 가는 음성에 질량은 없다. 서로의 중력을 덜어주지는 못한다. 마주 보고 앉았다는 것은 결국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는 것. 우리의 말은 꼬리를 문다.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결국 머리를 보지 못하고, 택시를 타면 비추는 네온 사인의 빛은 올 때의 그 색깔 그대로 다. 많은 것을 말했지만 무엇도 말하지 않은 기분이다. 오히려 말을 더 하지 않은 기분이다. 분하기보다는 이해해서 싸늘하다. 여기서 그칠 뿐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더 답답하다. 하지만 내일도 난 테이블에 앉을 것이다. 술기운을 빌려서 뭔가를 나눈 느낌을 받을 것이다. 찰랑거리는 술잔을 든다. 짐짓 위로를 건네고 호탕하게 웃는다. 고개를 든다. 그 앞에 있는 거울이 보인다. 나는 다시 택시에 탄다. 침대에 눕는다.

06. 호수 (Feat. Option)

호숫가에는 바람이 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뭔가 새로운 향기를 맡고 싶다. 잔잔한 호수에서 올라오는 물 냄새가 나쁜 건 아니다. 좋긴 하다만 맡다보면 어지럽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차가운 향기라는 생각이 든다. 바람 불지 않는 조용한 호수는 당연하게도 나의 얼굴을 비춘다. 또 한번 바람이 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호수의 표면을 어지러뜨리는 따뜻한 바람이 불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호수에서 눈을 뗄 수 있을 텐데. 호수가 나를 삼키면 나는 죽을 텐데, 낙엽 위에 앉자 싸늘한 냉기가 몸을 저며온다. 한번도 보진 못했지만 사막의 뜨거운 모래바람이 그립다. 더워 어쩔 줄 몰라 외투를 내팽겨 치게 만들고 호수를 목졸라 메마르게 하는 태양이 보고 싶다. 호수는 하나의 오아시스로, 작아지겠지만 농축된 투명한 생명수로. 열락의 사막에서 태양과 신기루와, 태양과 낙타와 웃고 눈물 흘리다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곳, 그 때는 물을 퍼는 나의 손길에 호수는 부숴진다. 나를 비추는 호수는 내 컵에 담기고, 이번에는 내가 호수를 삼킨다.

글 by 톨게이트킴

Mixed by Doubdub
Mastered by Doubdub
Recorded at 그냥해스튜디오
Artwork by Modish sn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