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정보

봄여름가을겨울

봄여름가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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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유형
남성/그룹
스타일
데뷔
1988년 /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가을)
아티스트 소개

김종진과 전태관,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전태관. 두사람의 첫 만남은 82년... 정원영에 의해서다. 고등학교때부터 친구들과 4인조 밴드[슈퍼세션]등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던 김종진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현재[빛과 소금]의 베이시스트 장기호를 만나 본격적으로 기타를 잡게 되었고, 그 후 한상원 정원영 김광민 전필립등과 함께 젬 세션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또한 전태관은 중2때부터 드럼에 빠지면서 대학에 들어가서는 교내 밴드 [킨젝스]에서 활동하며 드러머로 있었다.


82년 정원영의 유학 송별파티에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86년 [김수철과 작은 거인]을 거쳐 같은 해 7월 김현식의[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함께 활동하다가, 유재하,장기호,박성식등 밴드 멤버들의 잇단 탈퇴속에 잠시 공백기를 가진 후, 송홍섭의 소개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세션에 참가하였다. 그 후 1988년, 김종진 (vocal & guitar)과 전태관 (drums)은 "봄여름가을겨울"란 이름으로, 첫 앨범 [봄.여름.가을.겨울]을 내게 된다.


그즈음 국내에서는 무척이나 생소했던 퓨전 재즈 fusion jazz 를 소개하며 세련된 밴드 음악에 목말라 있던 국내팬들에게 커다란 환영을 받았으며 3곡의 연주곡을 수록했다는 점 또한 상당한 도전이었으나 그러한 파격이 오히려 당시의 가요계에 신선한 자극제로 작용했다.


이후 발표하는 앨범에도 이들은 한두 곡씩 연주곡을 실음으로써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게 된다.

이어 '어떤 이의 꿈'이 담긴 2집(1989년) 역시 성공을 거둔 뒤 이들은 데뷔 이후 지속해온 라이브 무대를 앨범에 담기로 결심, 1991년 앨범을 발표하는데 1990년 숭의음악당과 63빌딩에서의 공연을 수록한 이 앨범은 국내 최초의 라이브 실황 앨범으로 꼽힌다.

1992년 이들은 음악의 뿌리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 작업한 3집「농담, 거짓말 그리고 진실」을 발표함으로써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들국화의 해체로 인한 국내 록계의 공백을 채우며 자리잡게 된다.

이후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을 하겠다는 야심을 보였던 4집「I Photograph To Remember(1993년)을 발표하지만 별 주목을 끌지 못한 채 묻혀 버렸고, 5집「Mystery(1995년), 6집「바나나 쉐이크(1996년), 1997년에는「Best Of Best」라는 베스트 앨범을 연이어 발표한 후 잠시 활동이 뜸했다가 2002년 5년 만에 7집「Bravo, My Life!」를 들고 다시 세상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Bravo, My Life' 는 40대에 접어든 김종진-전태관의 심정이 그대로 담아낸 중장년층의 마음을 대변하는 곡으로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었고, 그간의 침체기를 벗어날 수가 있었다. 7집 이후에는 주로 연주곡 중심의 앨범 발매와 공연 위주로 활동을 했으며 다수의 히트곡을 남기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2012년 드러머 전태관이 신장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비록 연주는 하지 못했으나 멤버 김종진과 함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했다. 특히 2018년은 봄여름가을겨울 데뷔 30주년을 맞아, 각별한 우정을 나눈 동료인 전태관과 김종진에게 특별한 해였다. 하여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 프로젝트 앨범을 발매했다.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이하 ‘친우방’)은 한국 대중음악의 자존심 봄여름가을겨울(김종진 전태관)의 데뷔 30주년을 맞아 후배 뮤지션들이 참여해 완성하는 프로젝트로 앨범의 수익금은 투병 중인 전태관의 치료를 위해 쓰였다. 2019년 1, 2월에는 콘서트도 예정되어 있었다. 


2018년 12월 27일 드러머 전태관이 신장암 투병 끝에 향년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이 사랑한 드러머', 한국 대중음악의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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