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정보

윤형주

윤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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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유형
남성/솔로
스타일
국내CCM
데뷔
1968년 / 내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아티스트 소개

영문학박사인 아버지와 성악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윤형주.


고등학교 시절 성가대원 이였던 그는 같은 교회 베이스 파트의 선배 조영남이 부르는 'Cotten fields'를 듣고 태어나서 느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종류의 충격을 받았다. 급기야 기타를 한번 만져보기 위해 선배 조영남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으며 대학에 들어가서는 완고한 아버지를 졸라 꿈에 그리던 통기타를 얻어냈다. 그의 음악 인생은 기타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200여 곡의 팝송을 외우며 기타에 빠져들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익근과 함께 트윈 폴리오란 그룹을 만들었다. 존 덴버(John Denver)를 연상시키는 감미로운 목소리와 하모니로 어느덧 음악 다방의 챔피언이 되었다.


음악다방 세시봉에서 송창식을 만나 트윈 폴리오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 그는 트윈 폴리오 음악의 총 디렉터 였지만, 보컬을 주도적으로 맡은 송창식에 밀려 2인자의 위치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비틀스(Beatles)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에 비견될만한 것이였으며 클래식 수업을 받았던 파트너를 대중적인 감수성으로 인도한 공로는 전적으로 윤형주의 몫이였다.


트윈 폴리오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연대 의대에서 경희 의대로 전과하게 된 그는 이 일로 인해 팀을 해체해야만 했다. 그는 한동안 의사 수업을 차분히 받았으며 학업에만 집중 하였다.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대중의 우상이 되가는 송창식과는 별개의 길을 걷는 듯 했지만 음악적 센스가 뛰어났던 그는 다시 프런트로 나왔다. "조개 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로 시작하는 '라라라'를 만들어 작곡가로 데뷔한 그는 솔로 앨범 발표 이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CM송으로 광고계를 제패했다. 지금 들어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오란C', '롯데 껌', '새우깡' 등의 작품이 그의 작품이며 지금까지 1400여 곡 이상의 곡을 만들어 냈다.


솔로 마지막 앨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과 같은 곡으로 저력을 보여준 그는 김세환, 송창식 등과 함께 [하나의 결이 되어]앨범을 발표해 자신들의 세대결집에 한 몫 했으며 [0시의 다이얼], [윤형주의 음악앨범], [연예가 중계], [열린 음악회]와 같은 프로그램에선 진행과 기획자로서, 종교계에선 [윤형주 창작 복음성가 모음] 발표 등과 같은 CCM, 강연, 라디오 진행, [또 하나의 아름다움] 등 저술 활동 등으로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는 멀티플레이어 로 맹위를 떨쳤다. 가수로서 KBS 가요대상과 음반 기획상 등을 받은 것 외에도 광고 음악으로 [동아광고대상], 카톨릭 매스컴 위원회에서는 공로상을 수상했다.


현재 '76년 이후부터 해온 광고음악 제작과 공연기획을 하는 한빛기획, 주차 사업 대행사 인파크, 무역업체 동진글로벌 등의 대표로 있으며 선교활동에 치중한 공연과 자선 콘서트를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아직도 열정을 잃지 않은 현역임을 주장하고 있는 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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