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정보

Chet Baker

Chet B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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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유형
남성/솔로
스타일
해외영화
데뷔
1949년 / But Not For Me
아티스트 소개

쳇 베이커 Chet Baker, (1929.12.23-1988.5.13) 미국, 재즈 트럼펫 연주가


쳇베이커는 1929년 12월 오클라호마주의 예일(Yale)에서 태어났다. 1946년, 찰리 파커가 당시 유명한 흥행주인 노먼 그랜츠가 개최하는 재즈 앳 더 필하모닉 콘서트에 합류하기 위해 서부 지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성공적인 콘서트를 마치고 다른 멤버들이 모두 뉴욕으로 돌아간 뒤에도 파커는 계속 그 지역을 떠돌면서 혼자 남아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술을 마시고, 클럽에서 잼 세션을 하면서 헤로인을 살 돈을 구하기 위해 골몰하는 것 뿐이었다.하지만 이 와중에, 그 때 그 지역의 소규모 레이블에 불과했던 다이얼(Dial)을 통해 녹음을 남기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파커의 디스코그래피 중 최상부에 위치한 명연으로 기록되고 있으니, 예술과 사회 그리고 인성(?)간의 괴리를 마냥 되씹게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당시 10대 후반이었던 백인 미소년 쳇 베이커는 잠시 동안이나마 버드(Bird:찰리 파커의 애칭)와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이 짧은 기간 동안에 베이커가 버드로부터 얼마만큼 많은 음악적 감화를 받았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무절제한 생활 방식만큼은 톡톡히 이어받은 모양이다. 그는 그 이후 자신의 음악 인생을 처절한 방랑 속에서 보내게 되는 것이다.


태어난 고향을 일찌감치 떠나 이주한 캘리포니아에서 유년기를 보낸 베이커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트럼펫을 익히기 시작했고, 앞서 얘기한 대로 찰리 파커와의 잠깐동안의 만남을 거쳐 입대한 뒤 군악대에서 근무하게 된다.이 시절이 그에게 트럼펫이라는 악기에 대한 많은 연습과 훈련의 기간을 제공한 것은 물론이다. 제대 후, 일취월장한 실력을 갖추게 된 그는 제리 멀리건의 쿼텟을 통해 유명해진 뒤, 찰리 파커와도 다시 레코딩 하는 등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경력을 쌓다가, 이윽고 자신의 독자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때가 '53년 경이었다.


이른바 웨스트 코스트 악파의 전성 시대와 맞물리는 시기였다. 이 당시는 또 흑인들이 주도하던 재즈 초창기의 모습이 지나가고, 학교 교육 등을 통해서 정식으로 음악에 대해 공부한 백인들이 청년기에 접어들 무렵이기도 하다. 그들이 배워서 알고 있는 지식은 물론 유럽의 클래식 음악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찌감치 조지 거쉬인이나 폴 화이트맨이 시도했던 것처럼 자신들이 흥미를 느끼고 뛰어든 재즈속에 자신들이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적인 방법론을 함께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별다른 형식적 특징을 갖지 못한 재즈가 클래식 음악과의 접근을 시도해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빛나는 즉흥 연주의 순간을 생명으로 하는 재즈의 본래적인 의미에 충실해 볼 때, 이들 웨스트 코스트 계열의 음악은 공허한 형식주의에 불과한 듯한 느낌을 줄 때도 있다. 데이브 브루벡은 이 악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이러한 논쟁의 중심이 된다. 그러면, 쳇 베이커는 어떤가?본격적인 리더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그는 방대한 양의 녹음을 남겼다. 그의 음악에서 어떤 특별한 실험적 요소를 발견할 수는 없다. 아니, 정확히 얘기해서 그럴 필요가 없다. 그가 그러한 것을 의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애절했고, 외로웠으며, 일면 퇴폐적이었다.


루이 암스트롱의 경우가 그랬듯이 대중들은 그의 트럼펫 연주보다 그의 노래를 사랑했으며, My funny valentine은 그의 또 다른 이름처럼 따라다녔다. 자신의 생애를 다큐멘터리로 다룬 영화처럼 쳇 베이커는 길을 잃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해서 그는 특정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술, 마약, 여자에 둘러싸여 자신을 내버려 두었으며, 고독과 방황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특히 약물과 관련하여 그는 먼 타향 땅인 이탈리아에서 1년간('60-'61) 옥살이를 하는 등 재즈에의 열정 못지않은 탐닉을 계속했다.


베이커는 재즈사 속의 어떤 특정 부류로 넣기 힘든 지극히 독자적이고 개인적인 아티스트였다. 본래 구분을 만들어내는 것은 평론가들의 직업(?)일 따름이지 개개의 뮤지션들과는 별 상관 없는 부질없는 짓이 아니겠는가. '73년 경부터 재기를 시도한 베이커는 꾸준한 레코딩 활동과 콘서트를 병행하면서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80년대에 들어서도 이러한 활동은 계속된다.


하지만, '88년의 네덜란드 투어 도중 자신이 묵던 호텔에서 발생된 비극으로 그는 결국 고독한 방랑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59세였지만, 이 당시의 사진을 보면 적어도 70세는 넘어 보인다. 방황이 건강을 해쳤던 까닭이다. 그의 죽음이 추락사로 결론지어지긴 했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사인이 되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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