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정보

Jamie Cullum

Jamie Cullum

공유하기
활동유형
남성/솔로
스타일
해외영화
데뷔
1999년 / What A Difference A Day Made
아티스트 소개

전세계 천만장 이상의 앨범 세일즈 기록을 보유한
영국 출신의 Jazz Pop 싱어송라이터, 제이미 컬럼 (Jamie Cullum)


스톤헨지의 지방으로 알려져 있는 윌트셔 출신으로 당시 나이 23살의 제이미 컬럼(Jamie Cullum)은 정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피아니스트 겸 보컬리스트로, 백만 파운드 규모의 레코딩 계약 체결하며 재즈계 신데렐라의 탄생을 알렸다.


제이미 컬럼(Jamie Cullum)의 피아노 실력은 형편 없었다고 한다. 연습하는 걸 지독하게 싫어했으며 이론은 커녕 조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낙제를 경험했고 아예 학교를 그만 둔 적도 있다. 그 때 나이가 11살이었는데 대신 그의 주위는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이미가 태어나기 전, 그의 아버지는 '충격 (The Impacts)'이라는 이름의 가족 밴드를 이끌고 있었다. 어머니가 보컬, 아버지는 리듬 기타, 삼촌은 리드 기타, 할아버지는 색소폰, 이런 식으로 구성된 밴드는 동네 술집을 전전하면서 버트 바카라크, 비틀즈를 비롯한 60년대 팝 음악을 연주했다. “뭐, 음악적으로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밴드가 아니었대요, 생활비 벌려고 연주했다 더라고요.” 제이미의 말이다.


몇 년 뒤, 컬럼 가족이 에섹스에서 윌트셔로 이주하고 나서 그런지와 헤비 메틀에 심취해 있던 그의 형, 벤이 13번 째 생일 선물로 전기 기타를 선물 받았다. 1년도 안 되어 벤은 순전히 독학으로 포효하는 리프와 힘이 넘치는 코드를 배웠다. 어린 제이미는 록 그룹 너바나나 사운드가든을 형으로부터 소개 받았다. 기타를 좀 치는 것이 동네에서 잘 나가는 방법임을 깨닫게 되자 이들은 더욱 열심히 기타를 연습했고 실력이 늘어 축축 늘어지는 블루스도 연습하게 되었으며 당대의 기타 거장들을 하나 둘 공부해 나갔다.


제이미는 기타 교습을 받기도 했는데 기초부터 가르친다고 시절도 한참 지난 곡들을 연습 시키자 교습소에 바로 흥미를 잃었노라고 회고한다. 그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에디 밴 헤일런처럼 칠 수 있는가 였다.밴 헤일런을 비롯한 여러 거장들의 연주를 연습하던 이들 형제는 부모가 모아 두었던 레코드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삼촌은 보사 노바를 가르쳐 주었는데 이들은 보사 노바의 분위기 보다는 코드에 더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듣게 된 것이 오스카 피터슨이었고 마일스 데이비스였다. 재즈의 매력에 한 번 빠져 들자 이들은 계속 재즈를 듣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제이미 컬럼은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다. LP로 들었던 재즈 연주자들에 반한 그는 이를 계기로 당시의 문화계 전반에 대한 탐험도 감행했다.


15살 어름에는 열정과 자유에 대한 추구로 가득 한 전후 세대의 모습을 그린 로 유명한 잭 키루액이나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읽기 시작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너무 조숙했던 것도 같고 너무 열심히 달려 들었던 것도 같다. 50년대 뉴욕 42번 가의 밤을 그린 것, 즉 새벽 6시까지 클럽에서 클럽으로 옮겨 다니며 연주하는 재즈 뮤지션의 이야기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다시 학교 생활을 하던 제이미는 드럼이나 베이스 사운드에 심취해 있는 또래들과 함께 밴드에서 키보드를 연주하기도 했다.그의 재즈 사랑은 점점 더 깊어 갔다. 아마추어 딱지를 떼고 프로 재즈 뮤지션이 되는 것을 꿈 꾸며. 그리고 때가 되자 제이미는 윌트셔의 재즈 신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어 연주를 시작했다.


나이 60, 70이 된 재즈 뮤지션들과 어울리면서 그는 재즈를 피부로 체험한다. 또한 나이 든 프로들도 이 젊은이의 열정과 코드를 헷갈리는 미숙함 까지 좋아하게 되었다. 제이미는 교실이 아닌 밴드스탠드에서 음악을 배웠다. 많은 재즈 애호가들이 다른 무엇보다 정교한 테크닉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젊은이는 테크닉이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연주에 필요하다는 것과 목표로 삼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대학에서 영화와 영문학을 전공하게 된 제이미 컬럼(Jamie Cullum)은 작곡도 시작하여 과제물로 제작한 단편 영화에 자신의 음악을 삽입하기도 했다. 연주활동을 병행하면서 어느 날 오후에는 뚝딱 앨범 하나를 만들기도 했다. [Heard It All Before(전에 다 들었떤 것)]란 제목의 이 앨범을 연주 현장에 들고 나가 장당 10파운드에 총 700장 팔았다. 이 돈과 융자 받은 학자금을 합쳐 앨범 하나를 더 만들었다. [Pointless Nostalgic(의미없는 향수에 빠져)]이란 타이틀은 형이 만든 앨범 수록곡에서 따 온 것이다. 제이미는 이 제목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했다.이 앨범은 영국의 재즈 레이블 Candid로 출반되기도 했다.


2003년 제이미 컬럼(Jamie Cullum)은 공식 3번째 음반이자 유니버셜 데뷔앨범인 [Twentysomething]을 발매해 UK 앨범차트 5위 진입을 하였으며 영국 최고 권위의 음악상인 The Brit Awards 2004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하였다.

아티스트 이미지

  • Jamie Cullum
  • Jamie Cull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