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이선경 2022.08.04 2
비가 내리고 난 다음날 아버지는 
소에게 쟁기를 채우고 논을 가셨다
척척 쟁기의 보습 날에 갈려나가는 논바닥
어떻게 알았는지 그럴 때면 노랑색 깃털의 
새들이 날아와 논바닥에 깔리곤 했다
그 새들이 황백로라는 것을 안 것은 
어른이 된 뒤의 일이지만 
황백로들은 논을 가는 아버지와 
소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곤 했다
논두렁 가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그 황백로들 아버지의 소가 갈아엎은 논바닥에서 
무언가를 찍어먹고 있었다
황백로들은 논을 가는 소의 다리 밑을 
들락거리기도 하고 
아버지의 종아리 사이를 오락가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도 소도 그런 황백로를 
쫓으려 하지 않았다
논을 가는 소와 쟁기를 잡은 아버지와 황백로들
그리고 논둑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어린 나,
그 네 가지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그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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