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김종호 2023.06.15 18
어린시절 노는 것이 좋았어
친구들과 개구리를 잡으며
한참 동안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땅거미가 짙어져 갔었지
지난 달력 모으셨던 할머니
나를 위해 모아 두셨던거야
달력 뒤에 글을 쓰고 공부하라고
큰 달력을 한 장씩 주셨지
그때는 그게 너무도 싫었지
한 장을 모두 채우라고 하셨어
그 큰 달력을 모두 채워야
친구들과 나가서 놀 수 있었거든

나는 달력 뒤를 가득채웠지
그냥 되도 않는 아무 글씨나 막 써 넣었어
밖에서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친구들과 개구리 잡으러 가기로 했었거든
빼곡히 채워진 달력 뒤를 보시며
할머니는 잘 했다고 칭찬하셨지
“공부를 열심히 참 잘 했구나!”
할머니는 뿌듯한 미소로 나를 보셨지
하지만 할머니는 글을 모르셨어
작고 어린 아무 것도 없던 나에게
그때의 할머니는 나의 전부였지

그 시절에 가슴 아픈 기억들
아프다는 말을 하지 못했지
나에게는 친구들과 다른 현실이
꿈이기를 간절히 바랬지
엄마 없는 아이라서 슬펐니
혼자라서 많이 외로웠었니
나에게는 나를 위한 선택도 없고
꿈이 없는 하루 하룰 보냈지
언제나 변함 없었던 할머니
너무도 곱고 포근했던 할머니
너무 그리워 보고 싶어요
그 곳에선 행복해 지시길 바래요
   
나에게는 할머니가 있었어
변함없는 내 사랑의 불씨였던 우리 할머니
자식의 핏줄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할머니는 나의 삶을 지탱해 주셨지
88올림픽으로 인해 철거되어
반만 남은 작고 허름한 오금동의 작은 집에
어느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연탄가스에 할머니와 나는 정신을 잃었지
수 년간 아무도 오지 않던 버려진 이곳에
새벽즈음 한 손님이 찾아 왔어
새벽기도를 다니시던 할머니 교회의 전도사님이
같이 가시려고 들렸던거야
아무리 불러봐도 할머니는 대답이 없으셨어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소중함을
정말 몰랐어요
사랑한단 말도 못하고 할머니를
떠나 보냈어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할머니께 너무 미안해요 
기도해요 꽃 같이 예쁜 할머니와
다시 만나 영원토록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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