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정보

이현석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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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유형
남성/솔로
스타일
데뷔
1992년 / Sky High (저 하늘 높이)
아티스트 소개
이현석(1969년)은 그룹 디오니소스 출신의 배재범, 예레미(Jeremy)의 조필성, 솔로 앨범을 낸 최일민 등과 함께 국내 속주 기타리스트 중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누나와 형들의 악기 연주를 보고 자란 그는 중 2때 부모님의 권유로 클래식 기타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음악 수업에 들어갔다. 그는 TV에서 김수철의 연주를 보고 충격을 받았고 이때부터 일렉트릭 기타를 잡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발모아라는 스쿨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었고 미국의 메릴랜드 주립대 경제학과를 다니던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데모테이프를 만들어 국내로 들어온다.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하고 연주곡 외의 곡에서 보컬까지 담당한 첫 번째 음반에서 그는 뛰어난 속주 프레이즈를 전개하며 탁월한 멜로디 감각을 보여주는 'Sky high'로 삽시간에 그의 이름을 음악계에 퍼뜨린다. 이 앨범에서는 리치 블랙모어(Richie Blackmore), 잉위 맘스틴(Yngwie Malmsteen)의 영향을 암시하듯이 바로크 메탈의 향연을 펼치는 'Life cycle'로 그의 스승들에게 영향력을 시인하고 있다.

1집에서 보여준 테크닉으로 뮤지션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그는 이승환의 앨범에 참여하며 세션으로도 인기를 누리다가, 1994년에 두 번째 앨범을 내놓는다. 흡사 서태지를 연상시키는 외모와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운 추억을 노래한 '학창시절'로 높은 인기를 누린 이 앨범으로 그는 완전히 오버그라운드로 넘어오고 수록된 사라사테(Sarasate, Pablo Martin Meliton de) 의 바이올린 곡을 기타로 새롭게 버전업한 'Zigeunerweisen', 'Agape', 'Newlywed', '달려라 번개호'와 같은 연주곡들로 심야의 라디오 프로그램 위주로 폭넓은 인지도를 얻는다.

하지만 2집의 성공을 답습한 듯한 '머리가 길어 슬픈'이 들어 있는 3집부터 그의 음악은 그리 큰 이목을 끌지는 못한다. 때론 부드러움과 공격성의 양면을 지닌 정확한 피킹과 속사포 같은 핑거링은 여전했지만, 속주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여린 보컬은 팬들의 원성을 샀다. 팬들은 그가 노래를 부르기보다는 기타만을 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는 심기일전한 4집에서도 이어졌으며 클래식에 바탕을 둔 화려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그의 기타도 둔감해져 가는 팬들의 사랑을 잡지는 못했다.

김경호의 앨범에 참여하며 곡을 만들어 주기도 했던 이현석은 드디어 팬들의 요구를 수용해 팀을 이끌고 등장한다. 새로운 보컬에 김성은을 끌어들이고 김경호 밴드에서 활동했던 베이스 주자 한철재를 영입한 그는 그룹보다는 자기 연주에 바탕을 두겠다는 의지로 이현석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현 세태를 비꼰 '스타가 되기까지' 에서처럼 보컬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지만 '스토커'와 같은 곡은 완전한 팀의 합작품으로 느껴지며 힘있는 보컬 뒤의 기타 리프들은 기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완성된 곡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 앨범에는 윤수일의 곡을 리메이크한 '토요일 밤', 폭넓은 편곡으로 덧입힌 '젓가락 행진곡' 등이 눈에 띄며 블루스의 필을 시도한 '여의도 블루스'가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도 전작에 비해 별다른 호응은 얻지 못했다. 어쩌면 혼자 모든 악기를 조율하고 프로듀서하며 전곡을 만들어 내는 그로서는 밴드의 무게가 부담스럽게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앨범의 크지 않은 반응은 팀 플레이보다는 간편한 자기 본위의 기타 연주를 추구하고 싶어하는 그가 다시 원맨 밴드 시절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팬들에게 주고 있다.

솔로 작업은 가끔 병행하고 그룹의 이름으로 록음악을 하는 것이 그에게 끊임없이 요청되고 있다. 이것은 그의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며 뛰어난 그룹 하나가 아쉬운 우리 록 시장의 황폐한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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