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정보

김현식

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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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유형
남성/솔로
스타일
발라드
데뷔
1980년 / 어둠 그 별빛
아티스트 소개

김현식은 1958년 1월 7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수유국교와 보성중을 졸업하고 명지고에 입학, 교내 밴드부 활동을 하며 점차 음악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소위 모범생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지만 부친의 지나친 기대에 대한 압박감을 느낀다.


그가 음악과 인연을 맺은 건 중학교 때 기타와 만나면서부터이다. 박인수의 '봄비', 비틀즈 의 'Oh! Darling', CCR 의 'Proud Mary' 등이 당시 그의 애창곡이었다. 그러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수록 성적은 떨어져 갔고, 스케이트를 타게 되면서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아마 그가 계속 스케이트를 탔고 아이스하키 선수가 됐다면 가수 김현식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경기고 낙방 끝에 밴드부가 유명한 명지고에 입학해 밴드부 활동을 하다 2학년 때 자퇴하고 종로의 뒷골목 생활을 하던 김현식은 끊임없는 음악에 대한 동경으로 마침내 업소의 통키타 가수가 된다.


그 당시 유명했던 종로의 "벌판"과 명동의 "쉘브르" 등의 업소를 드나들다 당시 유명했던 통키타 가수 이장희, 송창식 을 만난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음악 활동을 계속 해오다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손댔던 대마초 혐의로 구속당하고 짧은 군복무 기간을 거치는 등의 시련을 겪게 된다.


78년 가수 이장희의 기획으로 서라벌레코드사에서 앨범 제의를 받지만 막상 앨범은 2년이 지난 80년이 되서야 발매된다. 타이틀 곡 '봄여름가을겨울' 이 조금씩 알려지게 되면서 클럽과 군부대 등 그는 그를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82년 봄,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된 그에게 이름 없는 가수의 생활은 현실 그 자체였다. 닥치는 대로 밤무대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렀지만 무언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갈증과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은 더해간다.


84년 짙은 소울과 블루스풍의 '사랑했어요' 가 수록된 2집이 20만장 이상 팔려 나가고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다. 평소 그룹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그는 '봄여름가을겨울' 의 김종진, 전태관, '빛과 소금' 의 박성식, 장기호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유재하와 함께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을 결성하고 3집 준비를 한다.


당시 그가 소속되어 있는 동아기획은 신촌블루스 , 들국화 , 한영애 등등 그때까지 언더그라운드로 일반에게 분류되던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소속되어 있는 의식있는 음반사였다. 1986년 '비처럼 음악처럼'을 타이틀로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3집 출반, 30만장 이상이 팔려나가면서 음악대중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는다.


방송에서도 그에게 손을 뻗긴 했었으나 수많은 출연 제의에도 불구하고 TV 출연하는 것을 자제해 그때부터 방송에 출연하지 않으며 라이브 무대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을 언더그라운드라 칭하게 됐다.


1987년 10월 전인권, 허성욱등과 함께 마약상용혐의로 또 한번 구속되고, 88년 2월 63빌딩에서 가진 콘서트에서 삭발한 채 팬들에게 참회를 한다.


8년 9월 '언제나 그대 내곁에', '사랑할 수 없어', 등이 실린 4집 앨범을 낸다. 그는 그의 앨범 말고도 선배 가수들의 작업에도 많은 참여를 했었다. 그가 참여한 신촌블루스의 3집의 '골목길', ' 환상', '바람인가 빗속에서' 등의 곡들에서 강한 재즈, 블루스의 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89년 11월 강인원의 주도로 권인하, 신형원과 함께 영화음악앨범 '비오는 날의 수채화' 에 참여한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 가 각종 방송 차트에 오르게 되자 방송에서도 종종 그를 볼 수 있게됐다. (아마 그때가 그의 생애 가장 방송 출연을 많이 했을 때일 것이다.)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던 그는 끊임없는 음악을 향한 열정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감을 술로 달래곤 했다. 그러나 마약에 이은 폭음으로 건강은 계속 악화돼 이때부터 병원을 주기적으로 드나든다.


1990년 3월 차마 다 하지 못했던 말들을 5집 '넋두리'에 실어 '신촌블루스' 3집과 함께 동시에 발매한다. 건강이 악화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연이어 6집 녹음과 '신촌블루스', '비오는 날의 수채화' 팀과 전국 각지를 누비며 라이브 콘서트를 강행한다. 이때는 어쩌면 다분히 술의 힘에 의해 그의 몸이 유지되던 때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90년 11월 1일 그는 마지막까지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다 6집을 채 마치지 못하고 지병인 간경화로 사망한다. 그의 유작이 된 [추억 만들기]에는 병마에 시달려 지쳐있는 그의 음성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6집에 수록된 '내 사랑 내곁에'는 그의 마지막 히트곡이 되었고 블루스 선율에 한국적인 정서를 그대로 담은 그의 허스키한 음성은 언제나 팬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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