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적응

이현준 2022.08.18 3
일단 잔부터 비워 
내가 아까부터 미뤘던 
술 좀 계속 먹어 달란 말 
집안 무너진 표정 
말고 잔 비워 
넌 상식을 좀 벗어난단 말과 
알지 너 여자들이 싫어한다
니 농담이 좀 필요하다 
니 상식을 벗어난다 해서 
비상식이 되는 건 아니지 하는 말을 삭이지 
겨우 예민함을 참아냈어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듯 높게 올라간 톤
산만 한 덩치를 택시에 넣어 
알아들을 수 없게 꼬였네 고장난 혀 
그때 니가 했던 말이 날 빡 때려 
너 이 새끼 애 보듯 보지 말래 투정 부린다고  
차라리 화를 내 싫어 너의 풀이 다 꺾인 모습은
술 먹고 화난 아빠는 견뎌도     
풀 죽은 건 견딜 수 없거든  

오늘밤은 깨어 있어 
비상등은 켜 있어 
깜박
어젯밤이 계속 돌아오는 기분 
나는 어디 있어  
오늘밤은 깨어 있어 
비상등은 켜 있어 
깜박 
내일 밤이 계속 돌아오는 기분 
나는 어디 있어 

밤에 달리는 택시 백미러에 차가 
빨리 사라지지만 니 말이 기억에 남아
나 취했었나 봐로 넌 또 피해서 나가지만 
나도 모르게 욱해서 칠 뻔했잖아  
난 다 적응했지
쌓인 걸 잘 덮으면 지나가고 
터질 것 같아 보이지만  
뻥 뚫렸지 
내 마음은 서툴렀지만
난 아닌 척을 했지 
이걸 알아챌 수가 없는 관계만 더 끌렸지 
어제는 깜박거리는 밤이 
잠깐 꺼지는 상상
해본 적이 있어 잠깐
잠과 꽤 비슷하나
잘못 번역됐나 봐 
죽을 용기로 산다는 말이
내일 밤이 돌아보고 
돌아오는 밤이 내게 돌아오면 
나는 어디 있는 건가 싶었어
매일 돌아오는 밤에 너무 과잉 적응했나 봐 
나 돌아가는 밤이 더 이상 아쉽지가 않아 

아마도 넌 지금 
돌아오겠지  
이 밤을 난 더 
아쉬워 않게 되어
아마도 넌지시 
그리워하겠지 
돌아오는 밤이 또 
돌아가는 밤이 되어
이 늦은 밤
이 늦은 밤 
과잉이 돼  
과잉이 돼 
과잉이 돼 
이 늦은 밤 
과잉이 돼 
과잉이 돼 
과잉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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