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200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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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레 (adore)

앨범유형
싱글/EP , 인디 / 가요
발매일
2020.08.09
앨범소개
픽션들 (PICTIONS) [2005]

발톱이 문지방을 경쾌하게 두드리면 곧 저기 구석에서 네가 보인다 너에게 모든 세상은 조금 높았을 텐데 다행히 우리 집 가구는 그리 좋은 게 없어 턱이 낮았다
나는 너가 너무 바보 같았고 좋아하는 담요를 덮고 누운 마지막도 너무 바보 같아 핀잔을 주고 얼른 일으키고 싶었다
나는 끝에 청각이 남는다는 얘기는 알아도 그게 몇 분이나 이어질지 몰라 사랑한다고도 얼른 못했다
나는 내가 너무 바보 같았고 너가 모든 것을 마지못해 허락해야 할 시간에 와서야 마음 놓고 말랑말랑한 앞발을 쉴 새 없이 주물렀다
나는 너의 침이 차갑고, 입술이 차갑고, 코도 차갑고 거기에 뺨을 부비고 입을 맞추고, 그런데 너의 비릿한 냄새는 끝까지 남아 있어 통통한 배를 문지르며 얼굴에 코를 계속 문댔다
나는 너의 계단을 버려야 하며 줄을 버려야 하며 아크릴 박스를 버려야 하며 의사에 이제 괜찮다고 연락해야 하며 산소통을 반납해야 하며 모르고 넉넉히 산 너의 모든 새것들을 나눠줘야 한다 나는 너의 모든 것을 나눠줘야 한다 우리는 너의 모든 기억과 사진과 사과와 감사를 나눠야 한다 우리는 몇백 개의 동영상을 틀어놓고 스피커에 귀를 대어 마이크에 포착된 네 들숨과 날숨을 읽어야 한다 나는 너의 불 꺼진 눈에 형광등이 비치면 꼭 나를 보는 것 같아 눈이 알아서 감기지 않아도 괜찮다 싶었다
나는 영영 따듯할 네 옆에 누워 지난 오늘을 상기했다 나는 축복 같던 그 숨고동이 내 옆에서 울림에 감격스러웠다 나는 만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새근새근 너를 재웠지만 이내 늘 그랬듯 약간의 무릎께로 내려가 손이 엉덩이에 닿을 만한 자리에 다시 몸을 뉘였다 나는 내 다리 언저리에 충만하게 느껴지는 너의 무게를 사랑하며 잠에 들었다 이제 너는 자리를 옮기지도 않고 내게 무거이 기대오지도 않고 너가 귀찮아 피하던 모든 것들을 가만히 받아들인다 이제 너는 내가 옆에 찰싹 붙어도 멀어지지 않는다 나는 사랑할수록 반길수록 아파오던 네 병이 이제야 조금은 덜 서럽다
너와 걷던 길을 굳이 피하지 않으려 한다 미리 겁내며 치던 모든 두렵던 농담도 두어 마디씩 스스로 던져보려 한다 바람이나 흙이나 숲이나 풀이나 비 고인 웅덩이나 눈발이나 아무튼 비릿하게 내게 불어오는 모든 것들에 네 조각과 숨결이 실려 있음을 믿는다, 믿어보려 한다.

[CREDIT]
Cover Designed by 유민희, 「안에 있을 땐 밖을 보자」 (acrylic on canvas, 2019)
Written and Arranged by 문학
Mixed by 문학
Mastered by Adrian Morgan @timeless mastering
Recorded by - 구자성 @sound mania studio
Bass - 파나마료브 다니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