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

심규선 (Lucia) 2015.09.30 96
한 조각 햇빛도 들지 않는 
그런 캄캄한 궁지에
바람을 타고서 날아왔나
작고 외로운 꽃씨
어둡고 후미진 골목에서 
넌 뿌리를 내렸지
눈길조차도 머물지 않는 
그런 꼭 버려진 아이같이

구둣발에 채이고 머리 위 
태양은 타는 듯 뜨겁네
아침이 더디 오길 
긴 밤 지새우며 
달빛에 위로해
여린 줄기 사이로 
잎맥을 따라서 
밀어올리는 건
외로움도 아니요, 
원망도 아니요
살아있다는 증거

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도 
꽃은 피어나
매일 아프고, 
두려운 일들에
짓밟혀도 꽃은 피어나
멍든 가슴에 오래 맺힌 꽃 
터지듯 병든 이 세상에
너의 향기로 너의 몸짓으로 
디디고 일어나 피어나

메마른 바람이 허공에로 
자장가를 부르면
의미조차도 알지 못해도 
슬퍼 꼭 엄마의 노래같이

헛된 꿈은 쌓이고 거리
위 세상은 차갑게 식었네
안개비라도 오길, 
긴 밤 지새우며 
별빛에 기도해
어린 가지 사이로 
잎새 끝끝마다 
뻗어올리는 건
그리움도 아니요, 
핑계도 아니요
살아있다는 증거

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도 
꽃은 피어나
매일 아프고, 
두려운 일들에 
짓밟혀도 꽃은 피어나
멍든 가슴에 오래 맺힌 꽃 
터지듯 병든 이 세상에
너의 향기로 너의 
몸짓으로 디디고 일어나

사람들은 그 꽃의 이름을 
몰라 영원히 그럴지 몰라
누가 봐주지 않아도
너의 꽃 피워올려
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도

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도 
꽃은 피어나
어떤 불행에 가난에 
아무리 짓밟혀도 
꽃은 피어나
너의 가슴에 오래 맺힌 
꽃 터트려 멍든 이 세상에
너의 향기가 멀리 퍼지도록 
고개를 들어 자, 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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