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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플힙플 #145

핫플힙플

시간과 꿈의 조각이 담긴 보물 상자 <사일로상점>

핫한 플레이스의 힙한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합니다! 핫플힙플 145번째 이야기!

INTRO핫한 플레이스의 힙한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합니다!

‘지금 나오는 노래 완전 좋은데, 이건 다 누가 알고 선곡하는 거지?‘ 이런 생각, 해 보신 적 있나요?


요즘 ‘핫’하다는 거기! 감성 충만한 분위기에 흐르는 노래마저 힙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바로 거기!


이 음악을 나만의 플레이리스트에도 넣고 싶은데, 주변 소음 때문에 검색에 실패하는 일이 다반사.


그렇다고 점원에게 물어보기는 조금 부끄러운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핫한 플레이스의 힙한 플레이리스트 – 한 달에 두 번, [핫플힙플]이 전하는 흥미로운 선곡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자료제공: 비스킷 사운드

HOT PLACE<사일로상점>

오늘 소개할 공간 사일로상점은 누군가의 오래된 물건과 그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함께 담아 판매하는 작은 골동품 가게다. 이 공간을 운영하는 에단은 콜로라도에서의 혹독한 이민 생활 중에 어머니에게 큰 위로가 되어준 개러지 세일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사연이 담긴 물건을 23년간 정성스레 보관하여 서울 망원동까지 가져왔고, 사일로상점을 차렸다. 사일로상점은 세월이 담긴 엔틱소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자 살롱이기도 하다. 코로나19의 어려운 시절, 같은 공간에서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작은 모임이 생겨났고, 지금은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사일로상점에 담긴 모든 것들은 결국 시간, 그리고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로 공간을 가꿔 나가고 있는 사일로상점의 주인 에단에게서 공간과 공간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INTERVIEW<사일로상점>

Q. 안녕하세요, 지니 뮤직 구독자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사일로상점의 ‘에단 & 수미”입니다.

 

 

Q. 상호인 ‘사일로상점’,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요?


“사일로(Silo)”는 저와 아내가 미국과 한국에서 장거리 연애하던 때에 둘만의 비밀 암호로 사용하던 단어에요. 처음 알게 된 건,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을 담아 애정하는 노래에 “You’re a Silo”라는 구절이 있어서, 궁금해서 뜻을 찾아보니 추수한 곡식, 씨앗 종자, 가축 사료를 저장하는 원통 타워형 건축물이란걸 알게 되었죠. 제가 14살부터 자란 미국의 콜로라도 엔, 농장에 Silo를 여기저기 볼 수 있는데, 부모님이 농장을 운영하시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농부들에겐 1년의 농사가 달린 “보물 창고”라고 하더군요. 장거리 연애라 자주 볼 수 없어서, 그 사람과의 추억을 사진으로 담는 비밀 tistory 블로그가 저에겐 보물창고여서 Silo라 이름 지었던 게 시작이었죠. 

 

 

Q. 언제부터 이 상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나요? 망원동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있는지?


긴 장거리 연애 끝에 제가 한국에 오고 나서야 제대로 된 연애를 하는데, 둘 다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게 그렇게 행복했어요. 해가 저물 때쯤 따릉이를 망원 한강공원에 두고 그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아기자기하게 숨어있는 작은 식당과 가게들, 그 나른한 매력이 저희를 한 장소로 이끌었는데, 오래전 망원시장 쌀가게였던 구조가 저희가 찾던 ‘아늑함’ 그 자체였고 그곳을 새롭게 꾸며 2020년 6월, 사일로의 이야기가 시작됐어요.

 

 

Q. 사일로상점의 탄생 비하인드와 같은 다큐멘터리를 유튜브에서 보았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물건 하나하나의 사연을 기억하는 사장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하는 영상이었어요. 물론, 영상을 봐도 좋지만 영상 전체를 보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사일로상점과 미국에서의 시절이 지금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가족이 함께 이민해 살았던 미국 콜로라도는 1년에 절반이 넘는 기간 동안 눈이 오고 차로만 이동이 가능한 환경이라 사람을 구경하는 게 어려운 곳이었어요. 그런 생활 속에서 우연히 차고 앞 세일(Garage Sale)을 알게 됐어요. 그 집 주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저희에겐 여행 같았죠. 매일 힘들게 식당에서 일하시던 어머니에겐 애장품에 담긴 이야기와 자신 가족의 사연을 얘기해 주시는 분들과의 대화가 서러운 타지 생활에서의 유일하게 따듯한 추억이었어요. 그렇게 23년이 지나,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품을 모은 수많은 박스들이 쌓이게 되었고 막연하게 언젠가 우리 가족이 모은 보물들의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는 엔틱상점을 열고 싶다고 상상했는데 이렇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전하려고 하는 건, 그 물건이 품고 있는 세월과 역사, 그리움, 애틋함이에요. 이 물건들은 단지 예쁘기도 하지만 60년 전, 100년 전, 누군가의 삶이 눈부시게 존재했다는 흔적이라는 사실 또한 전하고 싶어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도 살면서 행복한 순간을 기억하려고 무엇인가 모으게 되는데, 여행 티켓, 물려받은 장신구, 손 편지들도 언젠가 정리해야 되는 때가 오고 그 소중한 추억들도 빈티지와 엔틱이 될 거예요. 우리는 사실 그런 행복의 징표를 모으려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Q. 사일로상점을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제게 아직도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는, 10살 여자아이가 아버지와 들어와, 팔찌와 귀걸이를 착용하고 아빠에게 자랑하고, 이건 무엇인지 저건 언제 만들어졌는지, 왜 만들어졌는지 제게 스스럼없이 물어봤을 때였어요.


꼭 구매하지 않아도 좋으니 언제, 왜, 어떻게 이 오래된 물건들이 탄생했는지에 대한 큐레이션과 어떤 분이 간직했는지에 대한 사연에 귀를 기울여 주실 분들을 팔 벌려 환영합니다. 사실, 보물들의 운명적 주인을 기다리는 거라, 보물을 데려가고 싶더라도 저희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요. 다른 누군가의 오래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려 깊은 마음으로 대화 나눠주실 분이 운명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물이 운명의 주인을 따라 이제 떠나면 영영 안녕이라 마지막 사진을 찍고, 그 보물의 역사와 이전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드려요. 용기를 내어 대화를 걸어주세요!


저희는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분을 기다리고 있어요. 하지만 그런 인연은 강요할 수 없죠. 그래서 기다립니다, 먼저 말을 걸면 부담스러워할까 봐 조용히요. 어색한 침묵을 뚫고 추억을 만들고 싶어 하는 그 한 분이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그런 분에게 최고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고 그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Q. 과거의 어느 유럽에 시간 여행 온 것 같다는 후기가 많습니다. 엔틱하고 화려한 소품 덕분이 아닐까 하는데요. 인테리어나 비주얼에서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의 시간여행이 너무 좋아서, 사일로상점을 두 가지 시공간으로 나누었어요. 주인공 ‘길’이 여행했던 그 시대들. 저희는 그 시대를 재현하고 싶었답니다. 살아보지도 않은 시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아내와 만든 공간이에요.


들어오자마 보이는 첫 번째 공간은 1880~ 1914년까지의 “아르누보(Art Nouveau)” 시대, 유럽 공장에 취직한 젊은이들이 작은 방을 얻어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는 재미로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던 그 시대는 젊은 작가들이 공산품에 지지 않으려 사람이 손으로 만든 ‘수공예’의 가치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던 때였어요. 무도회장에서 만난 신사 숙녀들이 작고 애틋한 선물과 편지를 주고받던 마지막 시대이기도 하고요. 잠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탐험과 예술이 신문에서 아우성치던 아름다운 낭만의 벨 에포크 (Belle Epoque) 시대라 불리기도 했던 그 시대에 친구 집에 초대받아 가면 보았을 공간을 상상하며 만들었어요.


두 번째 공간은, 실제 벽을 허물어 시간의 벽을 넘는 것을 표현했어요. 1920~1940년대의 “아르데코(Art Deco)” 시대. 미국 시골에서 대도시로 상경하는 젊은 현실주의자들이, 아는 사람이 없어 인맥을 만들려 가진 돈을 다 털어 한껏 꾸미고 파티에 참석했던 혼돈의 개츠비 시대. 빈부격차가 심해 돈을 모아봐야 아무 소용없으니, 내일이 없는 듯 오늘만을 위해 살던 시대요. 천국을 가져다줄 것 같았던 기술과 문명의 끝이 겨우 지옥 같은 세계대전이라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이 유럽을 떠나고 남은 폐허와, 예술가들이 현실을 부정하고 병적으로 재즈에 취하던 공간을 상상했어요. 오래된 물건들은 단지 분위기나 화려하다는 인상을 넘어선 향수와 실제 존재했던 누군가의 애틋함이 담겨 있어요. 여행을 가면 그곳에서의 모든 게 추억이 되듯이 사일로에 여행 오신 모두가 돌아오지 않을 오늘의 추억을 만들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Q. 사일로상점은 살롱의 기능도 하는 거 같아요. 2층 살롱데상도 소개해 주세요.


COVID-19 로 모두 힘들어하던 시기, 사일로에 약속도 없이 찾아온 분들끼리 서로 처음 만났지만, 와인을 가져와 잔을 기울이며 사는 이야기를 하며 웃고 울던 기억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피아노와 기타를 치는 분들도 생기면서 앉을 곳이 부족해 항상 미안했어요. 운명적으로 이곳에 찾아온 분들을 위해 쉴 곳을 만들고 싶어 1년 반 동안 2층을 직접 만들었어요.

 

 

8개의 각기 다른 테마로 꾸며진 방들의 이름은: <앨리스가 떨어진 토끼 굴> <헨리 포드의 방> <사연 있는 여배우의 방> <로트렉의 거실> <지중해의 비밀> <소공녀의 비밀> <비밀의 방 I & II>입니다. 좋아하는 자리에 짐을 내려놓고, 시간여행을 하다 보면 현실도 잠시 잊고 아름다움과 예술을 탐닉하게 될 거예요. 요즘 듣고 싶은 응원의 말을 카드에 적어 마술사 모자에 넣고, 다른 사람이 적은 카드를 랜덤으로 가져갈 수 있어요. 또는, 나만이 알고 있는 글귀/대사/가사를 적어 공모전에 참여 할 수 있고, 가장 하트를 많이 받은 글은 채택되어 상품이 있습니다. 에단이 자리에 있을 경우, 공간을 투어하는 도슨트 서비스도 가능합니다. 일과 사람에 지쳐 잠시 다른 세상에서 쉬고 싶을 때 <살롱 데 상>에서 오래된 엔틱에 파묻혀 음악 듣고 책읽고 예술 작품들과 눈 맞춤 하면서 다시 설렘을 발견할 수 있어요.

 

 

Q. 올드 팝 등의 매장 음악은 이곳의 분위기를 한층 더 고풍스럽게 만들어 주는 듯합니다. 평소 매장 음악은 어떤 기준으로 골라서 틀어 주시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엔 ‘시간여행’이라는 주제로, 좋아하는 “아르누보 (1870~ 1914)” 시대의 클로드 드뷔시, 모리스 라벨 같은  젊은 작곡가들이 만든 낭만적인 인상주의 음악, 그리고 드뷔시와 친구였지만 그와 전혀 반대되는 음악을 만든 에릭 사티의 초현실적인 음악을 묶은 목록을 만들었고, 그 시대에 아직 존재했던 무도회장에서 즐겼을 낭만파 (1815~1880) 쇼팽, 리스트, 슈베르트의 왈츠 목록, 또는 그 이전의 바로크 음악 목록들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아르데코 (1920~1940s)” 시대 뉴욕 할렘 사교클럽에 출연하던 듀크 엘링턴 빌리홀리데이의 음악들 목록, 브로드웨이의 콜 포터와 어빙 벌린, 흑백 TV 스타 알 존스와 빙 크로스비,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인 풍요 속 사람이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저항해 무정부주의와 절망을 환호했던 “비트 세대”에 등장한 쳇 베이커, 빌 에번스 의 음울한 목록들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하루 종일 사일로를 지키다 보니, 가장 오래 공간에 머무는 건 저와 제 아내더군요. 그래서 저희 스스로를 위로해 주는 노래들을 감정 별로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어떤 날엔 수미가 좋아하는 디즈니의 오래된 노래들을, 다음엔 파리의 카페에서 흘러나올듯한 프랑스 재즈 음악, 또 어떤 날은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듯한 독일의 가곡들. 그러다 점점 요즘 만들어진 음악들 중 오래된 음악의 향수를 일으키는 곡들을 듣기도 해요. 사일로에 오신 분들이 즐거운 경험을 하기 위해선, 저희들이 먼저 마음이 안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모든 곡들의 기준은 저희 부부의 그날의 감정을 만져주는 곡들이에요. 적은 수의 악기 또는 나른한 보컬로 사람을 꿈꾸게 하는 노래들을 주로 좋아하는 편입니다.

 

 

Q. 얼마 전엔 오드 트리의 공연이 있었어요. 이와 관련한 소개와 함께 앞으로 사일로상점에서 펼쳐질 재밌는 일들이 있다면 소개 해주세요.


작년 2023 은 정말 혹독했어요. 모두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계속 오르기만 하는 물가와 문자 그대로 시린 겨울 추위로 텅 빈 곳을 운영을 하는 게 힘들어, 문을 닫고 영어강사로 일하는 날들이 많았죠.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 이브에 문을 두드려 사일로 문을 열고 찾아준 ‘오드 트리’께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재즈로 노래하신다고 했을 때 서러운 기다림을 보상받는 것 같았어요. 마치 오래 전 준비된 것처럼 꼭 맞는 취향의 따뜻한 기타와 목소리. 미국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저를 위해 불러주신 “Christmas day”는 저를 무너뜨렸습니다. 이후 알게 된 오드트리의 음악은 저희만 위로 받기엔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레 보컬이신 이한율님과 대화를 나누다 마음이 맞아, 2층 <살롱 데 상>의 공간에 맞춘 오드 트리의 음악들로 공연을 주최하게 되었고, 영화 속 환상 같은 첫 공연이 이틀 동안 열렸습니다.


사실 저희의 꿈은, 고흐의 동생 테오, 모딜리아니의 친구 폴 기욤, 모지스 할머니를 발견한 루이스 칼도르 처럼 예술가의 삶이 담긴 작품의 고유한 재능과 진정한 매력을 세상에 소개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뮤지션, 공예가 들의 작품을 공연과 전시로 소개할 예정이에요. 저희는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작은 곳이지만, 그에 걸맞게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존재할 거예요. 1층과 2층을 유지하기 위해 올해는 마지막 춤을 추듯 추억을 많이 만들 거고요. 그뿐 아니라, 이 도시의 낭만을 구원할 여러 가지 테마 파티를 준비하고 있어요. 지난 가면무도회, 최고의 콧수염 투표의 파티에 이어, 개츠비 시대 코스튬 파티, 살인사건 탐정 파티, 해리포터 퀴즈 파티 등이 계획되어 있어요. 올해부터는 제가 즐겁게 아이스브레이킹 & 게임을 진행하며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 회화 스터디 모임도 무료 레벨 테스트 & 워크샵 이후 시작할 예정이에요.

 

 

Q. 사일로상점은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시나요?


사일로상점은, 빠르게 많이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에 호기심 있게 귀 기울이고, 시대와 예술에 대해,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살아있음을 축하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래요. 문을 닫는 날까지 단 한 명의 운명의 주인이 자신의 보물을 찾도록 집중하는 곳이 될 거예요. 과거의 수공예 작품들을 아카이빙 하고 시대와 추억의 유산을 전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 그래서 그런 이상한 가게가 있었다고 누군가에겐 기억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