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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사의 결정적인 싱글들 76화

힙알사전

힙합사의 결정적인 순간을 장식한 싱글들 76화

 

2011년 힙합계는 커다란 고민과 직면했다. 과연 힙합 음악의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할 것인가?! 모든 논란은 드레이크(Drake)의 음악으로부터 시작했다. 2009년과 2010년 사이에 걸쳐 등장한 수많은 괴물급 신예 중에서도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는 두 번째 정규작 [Take Care]에서 장르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었다. 음악적으로 힙합은 약간의 우위를 점할 뿐, 알앤비, 힙합, 일렉트로팝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Marvin's Room”이 있다. 드레이크의 시작부터 함께한 프로듀서 노아 “포티” 셰비(Noah "40" Shebib)가 만든 이 곡은 여러모로 기존의 힙합 프로덕션과 동떨어졌다. 베이스는 소거되고 드럼도 뒤로 물러난 채, 신시사이저로 주조한 감성적이고 우울한 멜로디와 무드가 부각됐다. 힙합보다는 칠웨이브(Chillwave) 요소가 결합한 얼터너티브 알앤비에 훨씬 가까웠다. 특히 잔향을 은은하게 퍼트린 사운드 믹싱에서 앰비언트 음악(Ambient Music)의 영향마저 느껴진다.

 

 

드레이크 또한 노래에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랩 벌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큰 비중을 차지한 건 노래다. 게다가 가사는 잔뜩 술에 취한 그가 헤어진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지질하게 구는 내용이다. 래퍼 대부분이 ‘네가 떠나든 말든 X도 신경 쓰지 않아.’내지는 ‘너 말고도 놀 여자는 많지.’라고 할 때 드레이크는 '네가 사랑하는 그 자식 엿이나 먹으라고 해,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을 여전히 생각하는 거 알아 / Fuck that nigga that you love so bad, I know you still think about the times we had'라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현재의 기준에선 이 같은 프로덕션과 래퍼의 보컬, 그리고 마초성에 반하는 가사 전부 흔한 사례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꽤 많은 힙합 팬이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대체로 호평이었던 미디어와 달리 적잖은 리스너가 힙합의 멋과 특징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일부 아티스트와 힙합 미디어 역시 리스너들만큼은 아니었지만 드레이크의 음악을 힙합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부정적인 스탠스를 취했다. 그가 이전까지 보여준 래퍼로서의 능력이 워낙 출중했기 때문에 후폭풍이 더 셌던 것 같다.

 

 

호평과 혹평이 엇갈리는 가운데 “Marvin's Room”의 인기는 대단했다. 차트와 판매량 성적은 물론, 오늘날 실질적인 인기의 중요한 척도인 온라인에서의 확산도 상당했다.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 릴 웨인(Lil Wayne), 조조(Jo Jo), 테야나 테일러(Teyana Taylor) 등등, 많은 힙합, 알앤비 스타가 자신만의 리믹스, 혹은 재해석 버전을 발표하여 “Marvin's Room”에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다. 그리고 한동안 시끄러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드레이크와 노아 “포티” 셰비의 음악적 방향성은 곧 힙합과 알앤비 전체를 아우르며 트렌드를 선도했다. 아티스트의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Marvin's Room”은 그렇게 2010년대 힙합 속에 뻗어내린 새로운 갈림길 중 하나가 되었다.